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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과 공개 소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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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는 양립하기 어렵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비공개로 소환하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워 공개 소환하면 피의자 인권 침해가 불가피하다. 카메라를 든 기자로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 늘 외쳐 왔지만 요즘엔 회의가 든다. 저급한 호기심이 국민의 알 권리로 둔갑해 인격 살해를 저지르고 있어서다.
특히, 피의자가 유명 연예인인 경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초상권을 말살하고 사생활을 파헤치는 일이 서슴없이 자행된다. 2023년 세밑 세상을 등진 배우 고 이선균씨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와 또 다른 사건관계인 사이의 사적 대화를 공개한 일부 언론을 탓하기 전에, 포토라인 앞에 선 그의 표정, 어투, 눈빛, 몸짓을 이리저리 뒤틀어 보며 호기심 자극용 '꺼리'를 찾던 장본인으로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알 권리를 핑계로 유튜브 채널 조회수나 높여보려 한 건 아닌지, 돌아보면 부끄러움만 밀려온다.
이씨의 죽음에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와 함께 경찰의 ‘공개 소환’이 연루됐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규정된 비공개 소환 원칙을 경찰이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청 훈령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은 사건관계인의 출석 및 수사 과정을 언론이 촬영, 녹화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씨는 지난해 10월과 11월 각각 1, 2차 공개 소환 당시 포토라인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지난달 23일 3차 소환을 앞두고는 비공개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받아주지 않으면서 세 번째 사과를 해야 했다. 공개 소환 강행에 대해 비판이 일자 경찰은 '취재진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궁색하다.
공개 소환은 형이 확정되기도 전 여론재판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폐해 때문에 오래전부터 피의사실 공표와 함께 개선해야 할 관행으로 꼽혀 왔다. 검찰이 피조사인의 기를 죽이는 데 포토라인, 즉 공개 소환을 악용한다는 '설'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실, 공개 소환은 이미 2019년 10월 전면 폐지됐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의해서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부인의 비공개 소환 조사 논란이 계기가 됐다. 조 전 장관 수사의 주도권을 쥐고 가기 위한 선제적 개혁 조치라는 평가가 컸지만, 법조 및 언론계에서 잘못된 관행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피의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윤 총장은 당시 "사건관계인의 인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검찰수사에 대한 언론의 감시 견제 역할과 국민의 알 권리를 조화롭게 보장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공개 소환을 과감히 폐지한 검찰총장이 현직 대통령인 지금 공개 소환에 의한 피의자 인권 침해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모든 수사 과정이 적법했다'는 경찰의 말만 믿고 침묵하는 것은 윤 대통령답지 않은 처사다. 4년 전 자신의 말처럼 '사건관계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조화롭게 보장할 방안'을 더 구체적으로 마련하도록 검경에 지시해야 한다. 잘못된 수사 관행의 질긴 고리를 끊는 것은 어쩌면 검찰총장이 아닌 대통령 윤석열의 숙명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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