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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와서 젊어진 인생, 섬 주민들 위해 봉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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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 ‘종로약국’.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하나뿐인 약국이다. 영업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해가 뜨면 문을 열고, 해가 지면 닫는다.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최영덕(76)씨는 “주민 생활 패턴이 일출, 일몰에 맞춰져 있다. 약국 운영도 거기에 맞게 한다”고 미소 지었다.
종로약국은 지난해 4월 18일 개원했다. 20년 가까이 운영되던 백령도의 유일한 약국이 2022년 8월 폐업해 반년 가까이 ‘무약촌(無藥村)’이 됐다가 다시 약국이 생긴 것이다. 최씨는 1970년대 ‘약국 1번지’ 종로에서 약사 생활을 시작해 경기도 안산으로 옮겨 30년 넘게 약국을 운영했다. 2015년 약국을 며느리에게 넘기고 은퇴한 뒤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다 백령도 소식을 들었다. 40여 년 전 백령도를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북한이 지척인 곳에서도 꿋꿋하게 사는 주민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분들이 약국이 없어 불편을 겪는다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무 연고도 없는 백령도에 간다고 하자 가족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섬에 약국이 없으면 의료 공백이 생긴다. 남은 인생을 섬 주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설득했다. 인천 옹진군도 관내 도서지역 약국 개설 시 임대료와 약사 주거비 일부를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어 개업을 도왔다. 약국 이름을 ‘종로’로 지은 것도 이유가 있다. 약사를 처음 할 때의 초심을 잃지 말고, 종로 못지않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두 가지 마음을 담았다.
약국 개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령도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4~6시간 거리의 먼 섬이다. 하루에 배가 두 번 뜨지만 기상 악화로 뱃길이 끊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종 자재 등의 운반 비용이 육지보다 두 배 이상 든다. 최씨도 겨울에 대비해 작년 10월에 냉난방 겸용기 설치를 신청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설치 기사 인건비가 확보되려면 3, 4개의 신청이 함께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의약품 공급이다. 적잖은 도매상들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며 난색을 표했다. “백령도를 서해의 독도로 생각하고 도와달라”는 최씨의 읍소에 그와 오래 거래한 한 군데 도매상이 도움의 손길을 줬다. 우리가 주변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피로회복제 ‘박OO’도 백령도를 비롯한 도서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다. 이번에 처음 해당 제약회사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공급을 해 백령도 주민들에겐 요즘 ‘박OO’가 최고의 인기다.
그는 도매상들이나 제약회사들의 ‘사회적 기여’에만 기댈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섬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교육과 의료 문제 아니냐”며 “병원과 약국이 있어도 의약품이 없어 유지를 못하는 곳도 많다”고 했다. 이어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의약품이나 필수 기자재의 도서 지역 공급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백령도 생활 8개월째. 최씨도 어느덧 ‘섬 사람’이 다 됐다. 단골손님과 가족처럼 가까워졌고, 두 달 전엔 색소폰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그를 비롯해 백령도 원주민, 파출소장과 직원, 수협·축협장, 백령초 교장 등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동호회 이름은 ‘청이네’. 1주일에 한 번 연습하는 장소가 섬 안에 있는 ‘심청각’이라 이름을 이같이 지었다. 작년 12월 12일에는 각자 한두 곡씩 연주하는 송년회를 열었다. 실력을 갈고닦아 올해는 노인정이나 주민자치회 등을 방문하는 연주 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섬 주민 가운데 워낙 고령자가 많아 이곳에선 ‘청년축’에 든다는 최씨는 “백령도 와서 다시 젊어졌다”고 껄껄 웃은 뒤 “젊어진 인생, 약사로서 나를 더 가치 있게 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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