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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손열음 무대 뒤에 '이들'이… 관객과 접점 만드는 '숨은 주역들'에 찬사를

입력
2024.01.01 10:00
20면

올해 주요 클래식 기획사·문화재단 설립 20·30·45주년 맞아
코로나 등 힘든 시기 거치면서도 연주자 위한 무대 확장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대원문화재단 신년음악회와 서울시향 공연에 각각 협연자로 나서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임윤찬. 대원문화재단·목프로덕션 제공

대원문화재단 신년음악회와 서울시향 공연에 각각 협연자로 나서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임윤찬. 대원문화재단·목프로덕션 제공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에 극장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관객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들으며 새 힘을 얻고, 동심으로 돌아가 판타지를 경험한다. 감동과 함께 현실의 묵은때를 씻어내는 순간이다. 해가 바뀌고 '신년음악회'를 찾는 관객도 많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등 국내 교향악단은 물론 빈 필하모닉 앙상블, 빈소년합창단 등 해외 단체의 내한 무대도 눈에 띈다. 빈 신년음악회는 전통적으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중심으로 연주한다. 국내 음악회에서는 랩소디나 헝가리안 춤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피아니스트 손열음, 임윤찬 등 굵직한 협연자들이 관객과 만난다.

신년음악회를 비롯한 연초 클래식 공연 예매율은 예년보다 높아졌다. 일부 관객이 특정 음악인과 고가의 명문 오케스트라 공연만 찾는 쏠림 현상도 있다. 그래도 팬데믹과 비교해 클래식 시장의 저변이 확대된 것만은 분명하다.

재미와 의미 위해 묵묵히 버텨 온 공연 기획자들

서울시향은 지난해 12월 21일 얍 판 츠베덴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했다.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향은 지난해 12월 21일 얍 판 츠베덴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했다. 서울시향 제공

심리학자 김정운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학적 가치는 '재미'와 '의미'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재미가 있어야 인생이 즐겁다. 그렇다고 말초적 재미만 있으면 흥미를 잃기 쉬우니 지속되도록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이런 행위가 좀 더 반복적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사람들은 그 행위를 통해 삶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가치는 그 누군가의 재미와 의미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진다. 송년음악회, 제야음악회, 신년음악회를 객석이 아닌 무대 뒤에서 마주하게 되는 기획자, 극장 운영자, 문화재단, 후원사, 방송국 등의 관계자들이다. 물론 무대 뒤에서도 재미와 의미를 넘어 보람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일은 현실이라서 무대를 바라보며 속이 타고, 입이 마르고, 조마조마한 순간을 수십, 수백 번 넘기면서 조금 다른 시간을 쌓게 된다. 항상 예비하지만, 이상적인 그림만 나오게 할 수 없을 때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올해 설립 20주년, 30주년, 45주년 등 기념할 만한 해를 맞은 문화재단, 기획사들이 있다. 문화계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경제적 위기와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대혼돈의 시기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가장 느리게 회복됐다. 여러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금호문화재단을 비롯해 더 많은 문화재단이 음악가를 후원하고, 상을 제정하고, 공연을 지원하고 있다. 기획자들은 다시 한번 팔을 걷어붙이며 멋진 무대를 만들고 알릴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이들의 수고로 훌륭한 연주자들이 더 많아졌다. 무대를 만들고 관객과 접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소신을 갖고 애써 온 이들의 수고가 지금의 대한민국 문화계를 이끌고 있다. 이들의 꾸준함 덕분에 문화를 즐기며 재미와 의미를 찾는 클래식 애호가도 늘어 가고 있다.

혼돈의 시기 버티며 공연 시장 확대 이끌어

클래식 음악 저변 확대에 힘써 온 KBS 클래식FM은 올해 특집 중계 프로그램 예산이 삭감됐다. KBS 제공

클래식 음악 저변 확대에 힘써 온 KBS 클래식FM은 올해 특집 중계 프로그램 예산이 삭감됐다. KBS 제공

이들 음악계 관계자의 노력이 무색하게 방송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많은 음악 관련 프로그램이 올해부터 예산이 삭감되거나 종영을 앞두고 있다. KBS 클래식FM의 특집 중계 프로그램은 올해 예산이 전액 삭감됐고, 수십 년간 클래식 애호가들의 곁을 지키며 방영 550회를 훌쩍 넘긴 MBC 'TV예술무대'는 올봄, 갑작스러운 종영을 앞두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공연, 문화에 대한 관심은 더 많아졌다고 하지만, 문화 예산이 가장 먼저 삭감되는 현실이 아이로니컬하다. 방송사는 교양 프로그램 의무 편성 비율이 있을 텐데, 이렇게 되면 지상파 방송의 존재와 명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 중에 '규칙적이지 않은 위대한 생애는 없다'는 말이 있다. 시류에 휩쓸리거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에게 적절히 어울리는 규칙을 '인내'라는 재능을 발휘해 습관화하는 것. 이것이 일생에 걸쳐 이어질 때 남들과 비교되지 않는 자기만의 위대한 삶이 쌓이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인물뿐 아니라 위대한 조직에 대한 묘사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체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 호흡해 온 하나의 조직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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