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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달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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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양사에는 시간이 통째로 멈춘 시기가 있다.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 사이다. 그 열흘 로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기도 태어나지 않았고, 누구도 죽지 않았다. 행복도 없었고, 전쟁도 없었다. 달력에서 열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율리우스력의 맹점으로 달력의 춘분이 실제보다 열흘이나 차이가 나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특명을 내렸다. “10월 4일 목요일 밤에 잠자리에 든 로마인들은 다음 날에는 10월 15일 금요일 아침에 깨어난 것처럼 행동하라.”
□ 엄밀히 따지면 대한민국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간도 정확하지 않다. 일본 도쿄(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는 표준시로는 일몰, 일출이 정확하지 않다. 서울(약 127도30분)에 맞춘다면 일본보다 30분 늦춰야 한다. 일부 명리학자들이 사주를 볼 때 30분을 늦게 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후 1시 5분에 태어났다면, 일반적 사주명리의 시간은 미(未)시지만, 엄밀히 따지려면 오(午)시라는 것이다. 2015년부터 3년간 북한 김정은이,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보다 30분 느린 표준시를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달력은 비대칭이다. 춘분은 3월 23일, 추분은 9월 23일이다. 정확히 6개월 차이처럼 보이지만, 날짜로 따지면 확연한 비대칭이 확인된다. 춘분~하지(92일), 하지~추분(94일)과 추분~동지(90일), 동지~춘분(89일)이 다르다. 봄ㆍ여름이 187일 내외, 가을ㆍ겨울은 180일 안팎이다. 지구 공전궤도가 타원형·비대칭이기 때문이다. 시민혁명 직후 프랑스가 도량형을 미터법으로 바꾸며 달력도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 1년이 13개월인 달력이 과학적일 수 있겠지만, 익숙한 게 좋다는 민중의 거부 때문이었다.
□ 새해를 맞아 새 달력을 뜯으며, 새 결심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일상의 나태함과 나쁜 버릇으로 돌아온 뒤, ‘작심삼일’을 자책한다. 그럴 때마다 1월 1일은 천문학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걸 떠올리는 건 어떨까. 우리에게 진정 새로운 건 매일의 아침뿐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작심삼일을 3일마다 결심을 다진다는 의미로 바꿔봐도 좋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경험하는 한 해가 되시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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