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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입력
2023.12.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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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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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림과 수면 문제로 클리닉에 처음 찾아 온 여성이 앉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평생 부모에게 순종하던 아들이 장가 가고 나더니 “이젠 화 좀 내지 마라”고 대들었다는 것이다.

이 여성의 말에 따르면 평소 성격이 솔직해서 말을 좀 많이 하지만 뒤끝은 없어서 별일 없이 잘 지냈는데, 이제 나이 먹고 힘 빠지니까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잠도 안 오고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한다.

가족들의 말은 조금 달랐다. 성정이 급하고 불 같은 스타일의 이 여성은 본인이 원하는 게 곧바로 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도 심하게 짜증을 내거나 며칠이고 입 다물고 사는 분이라고 한다.

배우자나 자녀들은 받아주지 않으면 더 시끄럽고 복잡해지니까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가족이 늘어나고 자식들이 나이를 먹고 나서도 본인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으면 가리지 않고 화내고 불만을 터트리곤 했다는 것이다. 이 분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그냥 종일 화가 나고 마음이 영 편치 않다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얼굴 표정에 나타나는 마음 상태를 연구해 1969년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인류 보편적인 기본 감정 6가지(공포, 놀람, 분노, 혐오, 기쁨, 슬픔)를 보고했다. 요즘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각종 댓글과 언어, 표정 등을 분석해 감정 지도를 만들고 우울증, 자살 예방을 도모하는 연구도 대개 이런 감정 분류에 기초해 진행되고 있다.

이들 인간의 감정은 주어진 상황과 타고난 기질(temperament)에 따라 다양한 수준을 보인다. 감정 동요가 별로 없는 분도 있고 그냥 화가 많은 분도 있는데,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쁜 감정은 없다.

다만, 상황과 대상에 따라 적절하지 않은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회 규범과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사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즉, 내 주변의 일들에 따라 우울·불안·분노 등의 감정이 일어난다고 그걸 다 표현하고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사회 속에서 사는 우리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을 한다. 감정에만 이끌려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받기보다는 본인의 가치와 삶의 기대에 맞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돕기 위해 운동과 명상을 하는 것이고, 필요하면 상담을 하거나 마음을 돕는 약을 먹기도 한다. 운동·명상·약물 모두 뇌의 전두엽을 강화해주는 것인데, 감정을 다루기 위해 우리 내면에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우선 뇌 깊숙한 곳에서 방금 느낀 이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는 이 순간 느끼는 것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또는 두려움인지도 잘 모르고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저 마음이 편치 않은 ‘불편함’에 시달리다가 부적절한 순간에 엉뚱한 사람에게 폭발하거나 충동적인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비수 같은 말을 내뱉고 나서 형광등처럼 잠시 후에 후회한 적이 있었다면 당신은 순간적으로 감정에 휘둘린 것이다. 실제 사람들은 지금의 내 감정이 무엇이고, 왜 느끼는지 깨닫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많다. 어쩌면 남의 장례식에 가서 제 한에 울고 온다는 것처럼 지금 느끼는 감정은 지금 그 일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도 있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자. 그리고 나서 그 전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을 감정의 라벨링이라고 하자.

그 다음에는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혹은 그냥 참고 넘어갈 것인가를 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이 과정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상황을 고려한 판단을 통해 감정을 다루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 감정대로 그냥 저질러도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인지 과정이다.

더 단순하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로운지’를 판단하라는 말이다. 화를 내고 때려치거나 인연을 끊고도 내 관계와 인생에 영향이 없다면 그리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이유는 그래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는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 삶의 가치에 맞게 이성적으로 정제된 감정적, 신체적 반응을 선택’하는 것이다. 슬픔과 분노를 그 자리에서 다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내가 상처받았음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또는 그저 조용히 마음 한구석에 그 사람 이름을 적어 놓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평소에 책도 읽고, 기도도 하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남에게도 또 내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던 여성에게는 몇 달이 지난 이후에 이런 말을 건넸다. 집에서라도 내 감정을 편하게 다 드러내고 살고 싶겠지만,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과 같이 잘 지내고 싶다면 친구와 가족, 배우자를 포함해 ‘내 감정을 그대로 다 드러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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