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내년 할리우드 기대작을 소개하는 기사를 지난 27일 냈다. 명성 있는 감독의 영화로는 조지 밀러 감독의 ‘퓨리오사’,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도전자들’, 재미동포 2세 정이삭 감독의 ‘트위스터스’가 개봉한다고 보도했다.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봉 감독의 신작이니 기대작에 포함될 만하다.
‘미키 17’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쉬턴의 SF소설 ‘미키 7’을 밑그림 삼았다. 먼 미래 인류가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패틴슨과 토니 콜레트, 마크 러팔로 등이 출연했다. 3월 29일 개봉 예정이다.
봉 감독이 ‘미키 17’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을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기생충’처럼 황금종려상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 만도 하다. 하지만 ‘미키 17’은 칸영화제 개막일(5월 14일)보다 한 달 넘게 먼저 개봉한다. 칸영화제는 세계 최초 상영작 초청을 원칙으로 하니 ‘미키 17’로 봉 감독이 레드 카펫을 밟을 확률은 사실상 제로다.
그러면 ‘내년에는 누가, 어떤 영화로‘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영화인들은 쉽게 답하지 못한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해 ‘헤어질 결심’으로 초청돼 감독상을 받았고, 차기작은 미국 드라마 ‘동조자‘다. 또 다른 칸 단골손님 이창동 감독은 ‘버닝’(2018) 이후 차기작 결정을 아직 하지도 못했다. 1년에 2편꼴로 영화를 선보이는 홍상수 감독이 물망에 오르는 정도다.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 모두 십 수년 전부터 칸 초대장을 받아온 감독들이다. 10년 전쯤부터 이들의 활약을 이어갈 후배 감독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여전히 눈에 띄는 후발 주자는 없다.
한때 영화 ’추격자‘(2008)와 ’곡성‘(2016) 등의 나홍진 감독, ’부산행‘(2016)과 ’염력‘(2018) 등의 연상호 감독이 후계자로 꼽혔다. 영화적 완성도와 대중성을 갖춘 이들이라 박찬호·봉준호 감독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후속작 부재(나 감독), 넷플릭스 드라마와 영화에 집중하는 행보(연 감독) 등이 둘을 칸영화제와 멀게 했다.
국내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매년 주목할 만한 감독들이 등장한다. 칸영화제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이나 비평가주간을 통해 이들 감독의 영화들을 종종 소개해 왔다. 한국 영화를 이끌 미래의 재목들은 많으나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하기 일쑤다. 재능 있는 감독들이 반짝이는 데뷔작을 내놓고도 후속작을 쉬 이어가지 못하거나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덩치 큰 상업영화들의 극장 장악, 독립영화와 주류 영화계를 이어주는 통로가 좁아진 점 등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등장으로 칸영화제 같은 유수 영화제의 역할과 위상은 달라졌다. 하지만 칸영화제는 여전히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을 위한 주요 발판이다. 칸을 거쳐야 오스카로 향하는 길이 빨라진다. ‘제2 기생충 신화‘를 원한다면 영화 인재들을 성장시킬 정책과 투자가 필요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5년 동안 미국 에미상과 아카데미상을 받을 영상 콘텐츠 5편을 만들겠다고 지난 11월 발표했다. 호기로운 목표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내년 저예산 영화 지원금은 올해의 반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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