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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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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일본에 '극장형 정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선으로, 자신과 대립하는 집단을 악으로 규정해 양측 간 대결을 '권선징악형 드라마'처럼 대중에게 보여주는 정치 수법을 이른다. 이에 능한 정치인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다. 자신이 추진했던 우정 민영화를 반대하는 관료와 이익집단, 정치인들을 '저항세력'에 비유했다. 복잡한 쟁점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갈등과 이해를 조율하는 정치 시스템을 생략한 채 TV 출연 등 미디어를 통해 여론에 직접 호소했다.
□여의도 정치는 극장형 정치를 닮아 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 연설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이재명의 민주당과 운동권 특권세력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대화 상대인 야당과 야당 대표를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고 5,000만 국민의 문법을 쓰겠다"는 발언이 무색할 만큼 여의도에 난무하는 전형적인 이분법을 편 것이다.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그는 기성 정치인과 다른 언변과 패션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의원들의 고성에 자세부터 낮추는 관료들과 달리,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자신의 논리로 반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비대위원장 취임 연설에서도 강조하려는 대목에서 양손으로 큰따옴표를 그리는 '에어 쿼츠(Air Quotes)' 동작을 반복적으로 취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의 그대'를 인용한 취임사로 'X세대'임을 드러낼 만큼 언론을 능숙하게 다룬다. 대중의 시선이 그쪽을 향하는 사이 비상 상황에 빠진 여권에 대한 반성과 대책은 슬쩍 자취를 감춘다.
□이해가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을 해결하는 곳이 정치라는 무대다. 한동훈의 극장형 정치도 스타 배우와 화려한 무대 조명만으로 해피엔딩을 보장할 수 없다. 일본 국민이 '고이즈미 극장'에 빠져 있는 동안 일본 경제는 더 나빠졌다. 우정 민영화 등 개혁정책들도 표면적인 변화에 그쳤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적지 않다. 시끌벅적한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허무함은 객석에 남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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