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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을 늘리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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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근로시간 법체계는 물론 경직적 근로시간 제도로 인한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심도 있게 고민하여 도출한 판결로 이해하며 정부는 이를 존중함.'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시간 산정 기준을 일(日) 단위가 아닌 주(週) 단위로 해석한 대법원 판결이 성탄절에 공개된 다음 날,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입장문을 보는데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판결문 어디에도 법원이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헤아렸다고 볼 만한 내용은 없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사용자 합의를 전제로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53조)을 뒀을 뿐 한도 초과 여부를 어떻게 가릴 것인지 규정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근로 현장에서 '일 단위 합산'과 '주 단위 계산' 방식이 혼재하니 이참에 기준을 제시했다는 대법원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합당해 보인다.
오히려 대법원은 판결의 의미를 설명하는 별도 보도자료에서, 주 단위 계산 방식이 일일 합산 방식에 비해 늘 연장근로시간을 적게 산정하는 건 아니라며 예시까지 들어 설명했다. 이번 판결이 행여 연장근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경영계 편을 들었다고 해석될까 봐 염려한 걸로 짐작된다.
고용부 입장문이야말로 속내로 읽힐 만한 데가 제법 있다.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로 판단함'이나 '향후 근로시간 개편 관련 노사정 사회적 대화 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반영하겠음' 같은 대목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는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을 다시금 밀고 나가겠다는 신호와 다름없다. 초장부터 '주 69시간제' 논란으로, 최근에는 신통찮은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로 인해 차갑게 식은 정책 동력을 되살려보겠다는 것이다.
대법원 의도가 어떻든 간에 근로자 복리와 직결되는 연장근로 관련 제도에 큼직한 공백이 생긴 건 사실이다. 그동안 고용부 행정해석 형태로 현장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온 '일 단위 합산' 방식은 이번 판결로 존립 기반을 잃었다.(고용부는 '조속한 행정해석 변경 추진'을 공언했다) 당장 제조·경비·병원 등 주야간 교대근무 사업장, 게임·정보통신(IT) 등 초과근무가 만연한 업종에서 근로자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부는 하루 이틀 늦더라도 이런 정당성 있는 목소리까지 '심도 있게' 반영해 입장을 내는 편이 나았다.
사업장마다 건전한 노사관계가 형성돼 있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장에 놀라울지는 몰라도 충격적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근로자는 양보할 수 없는 권리가, 회사는 필수불가결한 경영상 필요가 있다는 상식적 공감이 있다면, 연장근로 역시 노사가 기준과 사정에 맞춰 얼마든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대통령의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로 더욱 시비가 엇갈린 '불법파업 연대책임 제한' 문제만 해도, 독일 역시 법적으로 조합원 개인에게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사용자가 노사관계를 생각해 손해배상 청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법이 전부는 아닌 거다.
우리 고용부가 우선해서 할 일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생산적 합의를 맺을 수 있게끔 여건을 조성하는 일 아닐까. 연장근로 건이라면 중소·영세업체에 노사협의 기반이 마련되도록 도우면서, 포괄임금제를 최소한의 불가피 업종만 남기고 폐지하는 게 원활한 정책 추진의 정공법이겠다. 당장은 멀어 보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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