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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치프처럼 장난쳤다는 경복궁 낙서범이여, 예술은 그런 게 아니다"

입력
2023.12.27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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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낙서 2차 테러범이 언급한 '미스치프' 전시
거대 권력, 대중 향해 도발적인 풍자 메시지 던져
자유로운 표현이면 예술? 전문가들 "언급 가치 없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담벼락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담벼락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스치프(MSCHF)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하고 싶었다. 난 예술을 한 것뿐."

지난 17일 경복궁 담장에 2차 낙서 테러를 했다가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설모(28)씨는 블로그에서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창작집단 '미스치프'를 언급했다. 그의 글이 언론에 보도된 20일 '구글 트렌드'와 '네이버 트렌드'에서 미스치프 검색량은 측정 최대치인 '100'을 기록했다.

미스치프는 누구일까. 설씨의 문화재 훼손을 장난스러운 예술 행위로 볼 수 있을까.

경복궁 담장 2차 낙서 범행일인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어 '미스치프'의 검색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 설씨가 블로그에 범행동기로 '미스치프'의 행위를 언급한 것이 알려진 20일, 검색 추이가 100(상대적 수치로 계량화한 최대 수치)을 기록했다. 네이버 트렌드 캡처

경복궁 담장 2차 낙서 범행일인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어 '미스치프'의 검색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 설씨가 블로그에 범행동기로 '미스치프'의 행위를 언급한 것이 알려진 20일, 검색 추이가 100(상대적 수치로 계량화한 최대 수치)을 기록했다. 네이버 트렌드 캡처


"예술한 것"이라는 경복궁 낙서범의 터무니없는 주장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스치프:성역은 없다(MSCHF:Nothing is sacred)' 전시 중, 경복궁 2차 낙서 테러 피의자 설씨가 모자를 훔친 작품 'MSCHF Wholesale'. 이혜미 기자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스치프:성역은 없다(MSCHF:Nothing is sacred)' 전시 중, 경복궁 2차 낙서 테러 피의자 설씨가 모자를 훔친 작품 'MSCHF Wholesale'. 이혜미 기자

미스치프는 '장난짓(mischief)'이라는 영어 단어 작명처럼 기성 문화와 해묵은 관습, 거대 권력을 풍자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지난달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미스치프:성역은 없다(MSCHF:NOTHING IS SACRED)'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설씨는 지난달 19일 이 전시를 관람했는데 1,000개의 모자로 구성된 'MSCHF Wholesale'이라는 작품 중 모자 1개를 훔쳤다가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8,000달러(약 1,000만 원)에 '독점권'을 판매하는 작품으로, 모자 1,000개를 패키지로 구매해야 한다. 설씨는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에 모자 판매 글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미스치프 전시회에 동참하세요. 저와 같이 사회적 나락을 함께 합시다(갑시다)." 미스치프의 도발적 창작을 오독한 나머지 절도를 예술로 포장할 수 있다고 착각한 셈이다.

나이키 운동화에 사람 피 한방울을 넣어 만든 신발 '사탄 신발' 666켤레를 선보인 미스치프는 나이키와 법정 분쟁에 휘말렸다. 이 신발은 유명인과 협업하는 문화와 브랜드 숭배를 종교적 이미지와 결합한 작업으로,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연합뉴스

나이키 운동화에 사람 피 한방울을 넣어 만든 신발 '사탄 신발' 666켤레를 선보인 미스치프는 나이키와 법정 분쟁에 휘말렸다. 이 신발은 유명인과 협업하는 문화와 브랜드 숭배를 종교적 이미지와 결합한 작업으로,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연합뉴스


동시대 주목받는 창작그룹 미스치프의 창작 세계

지난 8일 기자간담회차 방한한 미스치프 멤버들. 왼쪽부터 케빈 위즈너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가브리엘 웨일리 최고경영자(CEO), 루카스 벤델 CCO. 연합뉴스

지난 8일 기자간담회차 방한한 미스치프 멤버들. 왼쪽부터 케빈 위즈너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가브리엘 웨일리 최고경영자(CEO), 루카스 벤델 CCO. 연합뉴스

미스치프의 세계는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①권력, 지배계층, 거대 자본 등을 겨냥하고 ②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만들며 ③참여형 감상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이번 전시에는 108개의 점으로 구성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Flumequine(2007)'의 점을 하나씩 오려낸 '108 holes'가 나왔다. 각각의 점들을 액자에 넣고 서명을 추가해 원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자본에 휘둘리는 미술 시장을 풍자하고 예술의 민주화와 해방을 표현했다.

미스치프는 사회에 시비를 거는 작업을 통해 "성역은 없다"는 메시지를 확산한다. 소금 한 톨보다 작게 만든 루이뷔통 가방을 약 8,400만 원에 판매하며 럭셔리 브랜드의 허상을 비꼬고, 앤디 워홀의 진품 1점과 가품 999점을 섞어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는 구조로 판매해 원작의 권위에 도전한다. 상자 크기만 한 시리얼 한 조각을 만들어 현대인의 과식 행위를 비판하기도 했다.

설씨의 낙서 테러나 전시품 절도와 달리 미스치프의 창작은 법의 테두리를 노골적으로 넘지는 않는다.

점 108개로 이루어진 데미안 허스트의 원작을 오려내어 각각의 작품으로 판매하는 행위를 통해 미스치프는 '예술의 민주화와 해방'을 표현한다. 대림미술관 제공

점 108개로 이루어진 데미안 허스트의 원작을 오려내어 각각의 작품으로 판매하는 행위를 통해 미스치프는 '예술의 민주화와 해방'을 표현한다. 대림미술관 제공


'Big Fruit Loop'는 실제 시리얼과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여 고유한 향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낸 상자 크기만 한 시리얼링 한 조각이다. 과식과 터무니없음을 동시에 보여준다. 연합뉴스

'Big Fruit Loop'는 실제 시리얼과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여 고유한 향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낸 상자 크기만 한 시리얼링 한 조각이다. 과식과 터무니없음을 동시에 보여준다. 연합뉴스


대림미술관에 전시 중인 작품 'microscopic handbag'. 정맥 주사에 이용되는 초소형 의료 기기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루이뷔통 핸드백으로, 소금 한 알보다 작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만 볼 수 있다. 고가의 명품백을 아주 미세한 크기로 만들어 그 존재 가치를 브랜드의 명성으로만 압축해 실용성을 없애버린 결과를 보여준다. 이혜미 기자

대림미술관에 전시 중인 작품 'microscopic handbag'. 정맥 주사에 이용되는 초소형 의료 기기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루이뷔통 핸드백으로, 소금 한 알보다 작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만 볼 수 있다. 고가의 명품백을 아주 미세한 크기로 만들어 그 존재 가치를 브랜드의 명성으로만 압축해 실용성을 없애버린 결과를 보여준다. 이혜미 기자


"표현한다고 다 예술 아냐"... 예술에도 사회적 책임 있다

16일 경복궁 담장에 낙서를 한 10대들의 범행을 모방해 17일 2차 낙서를 한 20대 남성 설모씨가 22일 경찰에 구속됐다. 뉴스1

16일 경복궁 담장에 낙서를 한 10대들의 범행을 모방해 17일 2차 낙서를 한 20대 남성 설모씨가 22일 경찰에 구속됐다. 뉴스1

전문가들은 경복궁 낙서 테러를 "예술의 범주 안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미스치프는 자본주의의 불평등, 전쟁, 기아, 난민 문제 등의 동시대적 사안에 대해 자신만의 언어와 조형 방식으로 저항하며 사회의 건강성을 추구한다"며 "어떤 미학적 가치도, 사회적 메시지도 담아내지 못하고 교양과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는 '반달리즘'(문화유산·공공시설 등의 훼손)을 행한 경복궁 낙서범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미스치프의 작품은 예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유사 예술 행위' 혹은 '대중예술의 새로운 유형'"이라고 냉철하게 평가하면서도 "사회가 창작·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예술가의 자기 책임도 중요하다는 뜻인 만큼 미스치프의 예를 들어 (설씨가) 법망을 빠져나가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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