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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분노는 정당한지 되새기는 자세

입력
2023.12.27 00:00
26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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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에는 2분 증오라는 시간이 묘사된다. 빅 브라더로 표상되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감시 체제하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특정 시간이 되면 다 함께 텔레스크린에 나타나는 적(즉 반체제분자)을 향해 온갖 증오와 분노를 퍼붓는 의식을 치른다. 소설 속, 2분 증오가 끔찍한 이유는 여기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저절로 사람들이 거기에 휘말리게 되어서 끔찍한 것이다. 공포와 복수심에 도취되어 폭력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광적인 상태에 빠지는 게 끔찍하다.

이 서술을 읽으면 인간 본성에 대한 조지 오웰의 냉철한 통찰력이 그저 감탄스러운 따름이다. 우리는 그가 쓴 것과 비슷한, 증오와 혐오가 끓어오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몇 가지는 그가 구상한 세상과 조금 다른 듯하다. 우리는 굳이 빅 브라더의 명령 없이도 인터넷에서 온갖 증오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자발적으로 분노에 빠진다. 2분? 우리는 하루 종일도 분노할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매일 딱 2분간만 혐오했다면 이 세상은 진짜로 지상낙원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감정만 느끼길 바라는 것처럼 말하지만, 편을 가르고 싫어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유튜브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찍기와 편 가르기가 메인 콘텐츠인 채널들이 그렇게 많은 구독자를 유지할 리가 없다. 혐오를 선동하는 가짜 뉴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리도 없다. 그렇게 한 집단을 '싫어해도 괜찮은 것'으로 낙인찍는 콘텐츠는 그냥 가벼운 농담과 유머의 모습을 한 채로 이 세상에 퍼져나가고, 우리는 증오와 분노를 자기도 모르게 학습한다.

이런 식의 학습된 분노를 피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 같다. 나는 가끔 내가 예전에 한 말을 기억해 내고 깜짝 놀라고 민망함에 떨 때가 있다. 그냥 인터넷에서 보고 웃기다고 별생각 없이 부당한 증오를 내포한 말을 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니까. 지금도 내가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 그러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게 내가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일이라는 게 아니다. 평소에 내가 인격자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소중한 친구들도, 분명히 좋은 사람들도 그러곤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기도 하고.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분노는 나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서로 사이좋게 싸우지 말고 지내요"라고 쉽게 말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응당 분노해야 할 불의가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분노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그런 불의를 무시하는 비겁한 짓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분노를 감지했을 때 한번 스스로를 점검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나의 분노는 정말로 합당한가, 아니면 그냥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 몇 개에 편리하게 사고를 위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자세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의심하며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완전히 그렇게 하는 것도 불가능할 테고. 하지만 지금은 연말이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 정말 좋은 때라는 말이다. 다가오는 2024년에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도록 한번 노력해보려고 한다.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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