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 시사
거부권 고유 권한이라며 정당화 않기를
권한 자제할 줄 알아야 민주주의 수호
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4일 KBS에 나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흠집내기를 위한 의도로 만든 법안”이란 생각이 확고하다며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 보겠다”는 말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25일 비공개로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대 회의에서도 특검법 수용 불가를 재확인했다고 한다. 야당이 총선을 겨냥해 특검 시기를 조절한 것으로 의심되기는 한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수사가 어렵기에 고안해 낸 특검이란 제도를 권력자가 무력화한다면 초유의 나쁜 전례가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상징이었던 공정은 사라지고 위선만 남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70%나 되는 거부권 반대 여론(10일 한국갤럽)은 단지 10여 년 전 주가조작 사건 수사만이 아니라,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행보에 대한 국민 불신이 상당히 누적됐음을 말한다. 이를 방치한 책임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있다. 최근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을 보자. 공직자와 배우자에게 1회 100만 원, 연 300만 원 이상의 금품 수수를 금지한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가능성이 높고 인사 개입 논란까지 더해졌는데도 해명이나 사과가 없다. 함정취재 논란과 별개로, 온 국민이 지켜본 의혹을 대통령 부인이면 묵과해도 되는 나라인가. 김 여사와 친분 있는 민간인의 나토 순방 전용기 탑승 등 비선 논란, 수천만 원대 보석 재산신고 누락 공방 등이 일 때마다 투명한 감시와 견제 필요성이 제기됐었다. 그런데도 제2부속실을 없애고 특별감찰관 임명에 주저했으니 ‘김건희 리스크’를 키운 잘못이 윤 대통령에게 있다. 국가기록사진을 김 여사 화보인 양 촬영해 공개하면서 의혹에는 “답변 않겠다”고 피한 대통령실에 있다.
윤 대통령이 고유 권한이라는 말로 정당화하며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법이 아님을 미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역설했다. 이들은 상대 정당을 경쟁자로 인정하는 관용, 제도적 권한 행사에 신중한 자제라는 두 가지 규범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 미국 대통령들이 법에 명문화되지 않았는데도 두 번 연임 제한 관행을 지켜온 것이 그러한 제도적 자제다. 반면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이 헌법 조항을 최대한 활용해 대법관 세 명을 해임하고 대법원을 장악한 것은 제도 남용이라 할 것이다.
검사 출신의 윤 대통령은 제도적 권한을 극단까지 사용 내지 남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3권 분립의 예외로 조심스럽게 행사돼야 하는 거부권에 벌써 6개 법이 좌초했다. 최근 법원이 위법성을 지적한 방송통신위원회 2인 체제도 단적인 예다. 위원들 합의가 근간인 위원회 취지에 반해 윤 대통령은 야당 추천 방통위원을 임명하지 않은 채 2인이 독주하게 했다. 국회에서 장관 탄핵 논의가 진행되면 경질하거나 사퇴했던 관행도 윤 정부에선 실종됐다. 탄핵 소추와 심판을 버텨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장수 장관이 될 판이다.
법에 금지하지 않은 모든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법이 부여한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는 것이 법치가 아니다. 당무에 개입하지 말랬더니 최측근을 비대위원장으로 세우고, 검사 출신을 방통위원장으로 보내 언론 장악 의지를 드러내고, 대통령 비판 보도를 이유로 압수수색을 일삼는 것은 정치적 규범을,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불법이 아니라도 그렇다. 검찰총장 시절 윤 대통령은 징계 청구, 수사지휘권 배제 등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총동원한 방법으로 고충을 겪었던 당사자다. 무리한 권한 행사의 문제를 누구보다 알 만한 그가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 여론을 존중하는 민주정치의 길이다. ‘법대로'라는 방패를 내세워 적대 정치만 하다가 임기를 끝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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