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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발이 한반도 밖 미군 전략 자산을 겨냥한 이유

입력
2023.12.26 14:00
수정
2023.12.26 14:09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지난 7월 13일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지난 7월 13일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2023년 새해 벽두부터 초대형 방사포를 쏘며 올 한 해도 한반도 정세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던 북한이 연말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다. 북한은 “미국과 추종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군사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욱 매진할 것임을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의 이러한 국제법 위반을 꾸짖고 제재해야 할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 회의에서 오히려 북한을 편들며 이번 사태가 미국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성토했다. 사실 러시아와 중국의 이 같은 입장은 지난 몇 년간 이들 두 국가가 대북제재 결의를 얼마나 많이 위반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교당국은 아주 오랜 기간 이들 국가를 설득해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신념 같은 것을 보여 왔고, 이번 안보리 회의 불과 사흘 전에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심각한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는 모습을 드러낸 바 있었다.

2023년 북한의 도발 키워드는 '반접근·지역거부(A2/AD)'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주변 강대국의 속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처신을 잘못한 약소국은 필연적으로 화를 입었다. 어느 정도 군사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적의 의도와 전략을 제대로 꿰뚫고 있지 못한 국가 역시 필연적으로 화를 입는 것이 세상 이치다. 북한은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은 도발을 자행했고, 그 도발을 통해 자신들의 국가 전략이 바뀌었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쏟아내 왔다. 1월 1일 초대형 방사포 도발부터 12월 18일 ICBM 도발까지 지난 한 해 동안 북한 도발의 내용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핵무기를 이용한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 구현이다.

A2/AD는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중국이 미국 군사력의 서태평양 활동을 차단·억제하기 위해 고안한 전략이다. 대량의 대함탄도미사일(ASBM)과 지상 발진 폭격기로 일본-대만-필리핀을 잇는 이른바 제1도련선 영역 내의 미군 전력을 파괴하는 것이 1차 목표이고, 항공모함·잠수함 등의 전력으로 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 외곽, 이른바 제2도련선으로 불리는 서태평양 지역 미군을 파괴·억제하는 것이 2차 목표이다. 중국이 A2/AD를 추구하는 것은 패권 경쟁 과정에서 중국 본토를 방어하고,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태평양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권을 넘볼 처지가 아닌 북한이 왜 A2/AD를 하려는 것일까?

중국 대미 전략에 맞춰 전략군 개편한 북한

북한은 2021년 6월 11일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 때 미국의 대북 압박이 북한 비핵화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을 염두에 둔 국제정치적 전략의 일부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중국과 대미 전략의 궤(軌)를 같이 하기로 하고, 전략군 개편을 결정했다. 이듬해 6월, 북한은 ‘군사조직편제 개편안’을 심의·의결했고, 전략군을 2개의 부대로 분할·개편했다. 하나는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경우 방어와 대응 타격을, 다른 하나는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2022년까지 북한판 A2/AD 전략 수립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무기들이 개발됐다면, 2023년은 이 전략의 시연과 실전 훈련 성격의 도발들이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20일 한미 연합공군훈련을 위해 한반도 인근에 전개한 미국 F-22 전투기가 군산기지에 착륙해 지상활주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지난해 12월 20일 한미 연합공군훈련을 위해 한반도 인근에 전개한 미국 F-22 전투기가 군산기지에 착륙해 지상활주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그 시작은 1월 1일 초대형 방사포 도발이었다. 북한은 이 방사포 도발 후 해당 방사포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공군기지 하나당 4발의 로켓탄 공격이 가능한 물량이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기지를 포함해 남한 내 주요 공군기지에는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이 배치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방공 작전에서 드러난 것처럼 최신형 PAC-3라도 1개 거점에 여러 발의 탄도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으로 100%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그중 일부가 핵탄두라면 요격은 더더욱 어렵다. 유사시 북한은 이 방사포를 이용해 주한미군 공군기지들을 우선 제압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에서 직선거리로 1,0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군산·오산기지는 북한은 물론 중국에도 가장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표적 변화…'남한 전략거점' → '미군 전략자산'

2월부터는 북한판 A2/AD를 완성하기 위한 다양한 장거리 타격자산들이 연이어 데뷔했다. 미 본토를 겨냥한 화성-15형 ICBM부터 남한 내 미군 시설들을 겨냥한 초대형 방사포, 순항미사일 발사가 이어졌고, 3월에는 아예 '전술핵 운용부대 핵 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이라는 명칭으로 탄도미사일·순항미사일·핵어뢰를 이용한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차단 훈련이 실시됐다. 3월에 발사된 모든 미사일은 동해로 날아갔지만, 발사원점과 탄착점을 가상의 선으로 잇고 그대로 남쪽으로 돌리면 미사일 발사 당일 한반도 인근에 전개됐던 미군 전략자산의 위치가 나온다. 3월 19일 탄도미사일은 미군 마킨 아일랜드 전단을 노렸고, 3월 21일과 22일에는 순항미사일과 핵 어뢰가 동원돼 한반도 남쪽에 전개된 니미츠 항모전단을 타격하는 훈련이 실시됐다.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CVN-70)이 지난달 21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니미츠급 항모인 칼빈슨함은 길이 333m, 폭 77m로 승조원 6,000여 명, 항공기 80~90대 탑재가 가능해 '떠다니는 군사기지'라 불린다. 부산=뉴시스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CVN-70)이 지난달 21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니미츠급 항모인 칼빈슨함은 길이 333m, 폭 77m로 승조원 6,000여 명, 항공기 80~90대 탑재가 가능해 '떠다니는 군사기지'라 불린다. 부산=뉴시스

북한은 7월, 미군 전략원자력잠수함 켄터키가 부산에 입항하자 부산을 상정한 거리를 찍고 탄도탄을 쐈다. 11월에 미국이 제주 남방 해역에 2척의 항모를 집결시키자, 이들을 상정해 중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고, 항모전단에 앞서 부산에 미 공격원잠이 들어오자 이를 겨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1발 발사됐다. 12월 17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쏜 것도 그날 낮 부산항에 입항한 미 공격원잠에 대한 타격을 상정한 거리였다. 다시 말해 올해 북한의 각종 도발들을 정리해 보면, 그들의 장거리 타격 자산의 주요 표적이 ‘남한 내 전략 거점’에서 ‘한반도 밖 미군 전략자산’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올해 장거리 감시정찰 자산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북한이 A2/AD를 준비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북한은 올해 5월과 8월, 11월에 만리경-1호로 명명된 정찰위성 발사를 시도해 결국 위성을 띄우는 데 성공했고, 지난 7월에는 무장장비전시회를 통해 새별-4형으로 이름 붙여진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정찰기를 공개했다. 지난 11월에는 평양 순안공항에서 IL-76 화물기를 개조한 조기경보기가 제작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장거리 감시정찰 자산 확충에 열 올리는 북한

남한 내 주요 전략표적은 대부분 고정표적이고, 북한은 그 좌표를 거의 다 알고 있다. 즉, 고정표적만 때릴 것이라면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정찰위성이나 고고도 무인기, 조기경보기와 같은 장거리 감시정찰 자산을 확보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들 자산을 확보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때리려는 목표가 ‘이동표적’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에 수십 ㎞를 이동하는 항공모함이나 상륙함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해 미사일 공격을 퍼부으려면 반드시 이러한 장거리 감시정찰자산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마킨 아일랜드함에 F-35B를 비롯한 전투기들이 탑재돼 있다. 부산=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월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마킨 아일랜드함에 F-35B를 비롯한 전투기들이 탑재돼 있다. 부산=사진공동취재단

미국과 패권을 겨루고 있는 중국은 유사시 자신들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비수가 될 동북아시아 내 미군 전략자산들을 확실히 제압해 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과 손잡고 MD 능력을 고도화시키고 있어, 이제는 핵을 쓰지 않고서는 서태평양 지역의 미군 전략자산과 거점을 완벽하게 제압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러나 잃을 것이 너무도 많은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쓸 수 없다. 상호확증파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북한은 모든 주민이 죽어도 수령 하나를 살려야 한다는 ‘총폭탄·결사옹위’가 국시인 나라다. 유사시 서태평양 미군 거점에 대량의 핵을 퍼부어 초토화시킨 뒤, 일부 강경파의 돌출 행동이라고 잡아떼고 중국으로 지도부가 탈출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 미국이 북한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수백만 주민이 죽는다 하더라도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생존과 기득권만 보장되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오히려 북한 안정화 작전과 반란 진압을 명분으로 중국군과 함께 돌아와 권력을 잡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고, 북한 정권 입장에서는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중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1등 공신이 되어 부와 권력을 반대급부로 받을 수 있으니 중국을 위한 핵 A2/AD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북한이 지난 1년 동안 말과 행동으로 일관되게 보여준 메시지를 직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미·중 ‘냉전’이 ‘열전’으로 전환되는 시기,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최악의 안보 위기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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