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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채무 3억 갚다 세상 떠난 모녀... 빚 상속 가르는 '운명의 3개월'

입력
2024.01.10 13:00
수정
2024.01.16 16:1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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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전쟁: 가족의 배신]
<3> 어느 날 삼촌 빚이 도착했다
먼저 세상 떠난 남편 빚 갚다가 시름
폐 끼치기 싫어 장례비 남기고 숨져
상속 포기 신청 땐 변제 의무 없지만
3개월 시한 놓쳐 빚 물려 받으면 고통
"원치 않는 '상속 폭탄' 빈번 주의해야"
한정승인 통해 재산 범위 내 청산 가능

편집자주

상속 분쟁, 더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사망자는 늘어나고, 가족 형태도 복잡해졌습니다. 부모님 사망 후 부동산에 욕심 내는 형제도 눈에 띕니다. 저성장 추세까지 고착화되면서 상속은 '이 시대 마지막 로또'가 됐습니다. 이래도 가족과 안 다툴 자신 있습니까. 죽은 자도 산 자도 걱정이 없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국일보가 취재했습니다.

지난해 11월 30일 김선희(가명)씨가 살던 광주 북구 아파트의 우편함 모습. 카드회사, 신용정보회사에서 보낸 우편물과 관리비 명세서가 꽂혀 있다. 박지영 기자

지난해 11월 30일 김선희(가명)씨가 살던 광주 북구 아파트의 우편함 모습. 카드회사, 신용정보회사에서 보낸 우편물과 관리비 명세서가 꽂혀 있다. 박지영 기자

"☆☆은행 김선희 귀하"

"◇◇카드 故 김선희님 상속인 귀하"

"○○신용정보 故 김선희님 상속인"

지난해 11월 14일 찾은 광주 북구 아파트의 한 우편함. 카드사와 저축은행, 신용정보회사에서 보낸 우편물들이 가득했다. 우편함 주인인 김선희(가명·52)씨는 한 달여 전 80대 어머니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금융기관들이 보낸 우편물이 빼곡했던 이유는 선희씨 앞으로 된 빚 때문이었다.

빚은 6년 전쯤 세상을 떠난 선희씨의 아버지가 남긴 것이다. 당시 상속 포기를 했다면 선희씨 모녀는 아버지의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만 '포기 시한'을 넘겨 버렸다. 선희씨는 이후 아버지 채무를 갚다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마지막까지 폐 끼치기 싫어했던 모녀

선희씨와 어머니는 지난해 10월 16일 새벽 5시 거주하던 아파트 화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선희씨의 옷 주머니에선 두 가지 쪽지가 나왔다. 하나는 처음 시신을 발견하게 될 사람이 보게 하려는 것으로, 아파트 동·호수와 현관 비밀번호를 적어뒀다. 사후 수습을 위해 도착한 소방대원과 경찰들의 일 처리를 수월하게 해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선희씨 모녀가 살던 아파트의 지난해 12월 19일 모습. 광주=하상윤 기자

김선희씨 모녀가 살던 아파트의 지난해 12월 19일 모습. 광주=하상윤 기자

모녀는 평소에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고, 그런 마음은 집 안 곳곳에서 확인됐다. 사건 당시 출동했던 경찰 관계자는 "등기권리증, 통장, 비밀번호, 도장 등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며 "9월 관리비는 따로 봉투에 담아 표시해 뒀다"고 말했다. 서랍 속에는 현금이 있었는데, 그 돈은 장례비로 쓰라는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모녀는 말수가 적었고 이웃과 교류가 적은 편이었다. 옆집에 거주하는 윤현숙(가명·76)씨는 "여기서 6년 넘게 거주한 것 같은데, 그 집 인테리어 하는 날에 문이 열려 있어서 딱 한 번 대화해봤다"며 "딸이 출근하면 어머니는 집 밖에 전혀 나오지 않았고, 식재료나 생필품도 택배로 시켰다"고 전했다.

선희씨의 주머니에서 나온 또 다른 쪽지는 친척 중에 유일하게 교류하던 외삼촌에게 남긴 편지였다. 편지에는 모녀에게 덮쳤던 말 못할 고통이 응축돼 있었다. "정말 오랜 기간 버텨왔는데 더 힘드네요. 엄마와 저는 서로가 전부라서 누가 혼자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없어 함께 가기로 했어요."

경찰에 따르면 선희씨의 외삼촌은 "세상을 떠난 매형이 남긴 빚을 갚느라 힘들어했다. 채무가 2억~3억 원 정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상속 포기 절차를 잘 몰라서 그대로 빚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외삼촌이 가끔 200만~300만 원씩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했지만, 모녀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남긴 빚, 물려받지 않아도 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선희씨가 생전에 아버지가 남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민법은 상속을 받게 되면 예금과 부동산 등 '플러스 자산'은 물론 채무 등 '마이너스 자산'까지 함께 받아야 한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서 받을 수 없으며, 재산보다 빚이 많다면 '상속 포기'를 신청해 부모 빚을 물려받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11월 30일 김선희씨 집 앞에 우체국에서 다녀갔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우편물은 은행과 신용정보회사에서 보낸 내용증명과 등기 서류였다. 박지영 기자

지난해 11월 30일 김선희씨 집 앞에 우체국에서 다녀갔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우편물은 은행과 신용정보회사에서 보낸 내용증명과 등기 서류였다. 박지영 기자

이때 상속인이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3개월'이다. 상속 포기를 하고 싶다면 자신이 상속인임을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청서를 접수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1순위 상속인의 경우 고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3개월을 산정한다. 선희씨도 아버지가 사망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를 신청했다면 빚에서 해방될 수 있었지만 때를 놓친 것으로 추정된다.

3개월을 넘기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속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태승 이우리 변호사는 선희씨 같은 안타까운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전했다. 예컨대 돌아가신 아버지의 채권자에게 소장이 날아왔는데, 항공기 조종사였던 아들은 해외를 오가느라 집에서 지내는 날이 적었고, 아내는 자녀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소장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 상태로 3개월이 지났고, 아들 부부는 결국 아버지가 남긴 빚 1억 원을 갚아야 했다. 이 변호사는 "그나마 변제 여력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속 채무로 파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망한 부모 재산에 손 대면 안 돼요

상속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면 고인의 재산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 민법에선 상속인이 고인의 재산을 '처분'한 경우 상속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예금 500만 원에 빚 2억 원을 남기고 사망했다면, 자녀는 500만 원 중 일부만 사용해도 빚 2억 원을 함께 물려받게 된다.

민법에 적시된 '처분'이란 고인의 재산을 사용하는 행위뿐 아니라, 고인이 가지고 있던 채권을 받아내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던 자동차를 매각하는 행위 △아버지가 생전에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내는 행위 등은 모두 상속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다만 고인이 남긴 돈을 장례비로 쓴 경우에는 상속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500만 원까지는 장례비용으로 인정된다.

한정승인·특별한정승인

상속 포기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민법상 상속 범위는 1순위가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손자), 2순위는 직계존속(부모·조부모), 3순위는 형제자매, 4순위는 4촌 이내의 가까운 혈족이다. 선순위자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채무는 후순위자에게 넘어간다. 고인의 배우자와 자녀가 상속을 포기하면 고인의 부모에게, 부모도 포기하면 형제자매에게 줄줄이 넘어가는 식이다. 후순위 상속인은 자신이 상속인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 신청을 해야 빚을 넘겨받지 않을 수 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자신이 상속을 포기하면 후순위자에 해당하는 친척들에게 이를 알리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는 "예전에는 4촌이면 가까운 관계였지만, 요즘은 연락도 하지 않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10년 넘게 교류가 없던 친척의 빚을 넘겨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본인 선에서 상속 절차를 매듭짓고 싶다면 한정승인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한정승인은 '물려받은 재산 안에서만 빚을 갚는' 제도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재산 1억 원, 빚 2억 원을 남기고 사망한 경우, 한정승인을 통해 재산 1억 원을 채권자들에게 나눠 갚으면, 남은 빚 1억 원은 사라진다. 상속인이 자신의 돈으로 고인의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상속 포기와 비슷하지만, 법적으론 일단 상속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한정승인을 하면 적어도 다른 상속인들에게는 채무가 넘어가지 않게 되는 셈이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한정승인을 하기 위해선 고인의 재산 내역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정부24의 '안심상속원스톱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은행 예금, 보험, 연금은 물론 부동산, 대부업체 이용내역까지 나온다. 한번 신청하면 2주 이내에 문자·이메일로 발송되기 때문에, 재산 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개별 기관을 일일이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원스톱 서비스도 한계는 있다. 사인(私人) 간 채무 조회는 불가능하다. 개인이 차용증을 쓰고 돈을 빌렸다면, 정부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상속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고윤기 변호사는 "상속을 이미 받았는데 사인 간 채무 때문에 채권자에게 소장이 날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도 '특별한정승인'을 통해 구제가 가능하다. 특별한정승인은 이미 상속을 받았지만 한정승인을 '특별히' 허용해주는 제도다. 앞서 언급한 사인 간 채무처럼, 상속인의 실수로 인해 채무를 누락한 게 아니라면 신청할 수 있다. 새로운 채무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3개월 이내에 신청하면 되고, 채권자에게 소장을 받은 시점부터 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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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박지영 기자
강윤주 기자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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