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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고려인, 귀화인 자녀'...출신은 달라도 한목소리로 합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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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찾아온 어둠 속에서 LED 촛불 군단이 이주배경 아동 지원 기관 안산 아주나무센터를 밝혔다. 크리스마스 시즌 공연을 위해 연습을 거듭한 외국인 및 귀화인 자녀 23명이 고사리 같은 두 손에 촛불을 든 채 노래를 시작했다. 황금빛 촛불에 드러난 얼굴들이 앳되다. 안경을 쓰고 까만 피부에 레게 머리를 한 남자아이, 그 옆엔 갈색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를 한 여자아이, 그 옆엔 노란 피부의 토실토실한 남자아이 얼굴이 눈에 띈다. 각기 특색을 뽐내는 합창대원들이지만 나름의 화음을 만들어 간다.
이주배경아동이란 한국 국적 없이 한국에 살고 있는 만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을 말한다. 크게 중도입국 아동, 다문화가정 아동, 난민 아동, 무국적 아동, 미등록 아동, 유학생 자녀로 나뉠 수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는 북한 이탈주민도 포함된다. 성장했던 국가에서 전혀 동떨어진 한국에 온 아동들은 주로 언어문화적 차이, 불안정한 체류 상황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주나무센터는 난민, 중도입국아동, 외국인가정자녀, 귀화인 2세 등 다양한 이주배경 아동의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센터에 속한 29명의 초등학생들은 매일 방과후 센터에 들려서 한국어나 학교 교과목 보충 수업을 듣는다. 주말에는 서울에 뮤지컬 공연을 보러가는 등 현장학습을 가기도 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을 때 교회나 이주민재단 주최 행사에서 공연 준비해 올리는 것도 센터의 교육 중 일부다. 선생님이 스테인리스 바구니를 꽹과리처럼 두드려야 겨우 조용해졌던 아이들은 연습이 시작되니 약속된 대형을 지키며 노래와 안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송영옥 센터장은 "매년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제일 즐거워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자신 또는 부모가 한국으로 이주했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이주배경 아동들의 상황은 각기 다르다. 현재 센터에는 앙골라, 콩고 등에서 온 난민 및 인도적 체류자가 7명 있다. 그중에는 2018년말 앙골라에서 한국에 입국했다가 난민 신청 자체가 거부돼 공항에서 1년 가량 머물렀던 루렌도 가족 사남매도 있다. 러시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계 재외동포인 고려인 부모 밑에 자란 아동들이 10여명도 센터 소속이다. 귀화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한국인 국적의 아동도 센터에서 함께 교육을 받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뭐 받고 싶어?"
콩고 출신인 '그라스 루렌도'(10)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얼 받고 싶냐는 말에 "돈"이라 답했다. 앙골라에 거주하던 그라스는 2018년말 자국의 핍박을 피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10만 원이 생기면 친구들과 맛있는 걸 사 먹고 디스코 팡팡을 탈 거란다. 반 친구들과 그중 가장 친한 김종현은 꼭 데려갈 거란 이야기도 덧붙였다. 앞머리를 파란색으로 염색한 러시아계 고려인인 스웨타(9)가 갖고 싶은 건 아이폰이었다. 네일아트 아티스트라는 꿈을 갖고 집에서 자주 네일아트 키트로 엄마에게 네일을 해준다는 스웨타는 아이폰으로 네일아트 사진들을 남길 생각에 표정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사랑'을 갖고 싶다는 낭만주의적 답변도 있었다. 필리핀 출신 어머니와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 귀화 부부 밑에서 자란 대한민국 국민 라이블리(9)는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랑'을 골랐다. 센터 대표 춤꾼인 라이블리의 꿈은 아이돌이다. 크리스마스 공연 당시에도 춤 공연의 '센터'는 늘 라이블리의 차지였다. 선한 눈매를 가진 카자흐스탄 고려인인 발레리(8)는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다며 배시시 웃음 지었다.
초등생들끼리 모이니 남아들의 장래희망 1순위인 축구선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그라스의 형 실로(11)는 펠레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 "손흥민도 좋죠. 근데 펠레는 흑인이잖아요. 그래서 더 좋아요." 자신의 정체성을 좋아하는 축구팀으로 프랑스 대표팀을 꼽았다. 골을 넣고 난 뒤 세리머니 포즈를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그의 눈에서 빛이 났다.
내년이면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외국인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진입한다. 성인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이주배경을 가진 아동도 늘어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교육기본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등 포함 다문화 학생’ 수는 2023년 약 18만 명으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인구 감소시대에 전체 학생 중 이주배경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도 3.5%로 전년(3.2%)보다 높아지는 상황이다.
증가하는 비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 타국가 문화에 배타적이라는 국제적인 평가도 공존한다. 2014년까지 실시된 제6차 세계가치관 조사 결과 '자신과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가 59개국 중 51위인 하위에 속했다.
이주민 복지 전문가 김옥녀 숙명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의 이주민은 더 이상 이방인으로서의 낯선 존재도, 위협적인 존재도, 연민과 동정의 대상도 아닌 저출산 고령화를 함께 극복해 나갈 지역사회의 한 주민"이라며 "이주배경 가정이 인간다운 보편적인 권리를 향유할 수 있게 관련 정책과 사회적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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