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미국이 열쇠 쥔 안보리 결의안, '휴전 촉구'서 후퇴?… 목소리 커지는 하마스

입력
2023.12.22 19:00
8면
구독

'즉각 교전 중지·국제법 위반 규탄' 빠져
미국, 찬성 시사했지만 "의미 없다" 비판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20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 급식소에서 음식을 배급받기 위해 몰려들어 있다. 가자=AP 뉴시스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20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 급식소에서 음식을 배급받기 위해 몰려들어 있다. 가자=AP 뉴시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이 또 미국에 발목을 잡혔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이 휴전 촉구와 이스라엘의 국제인도법 위반을 규탄하는 결의안 초안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22일(현지시간) 예정된 표결에서 가까스로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상당히 후퇴한 내용이 담겼을 공산이 커졌다.

국제사회는 "가자지구에는 시간이 없다"며 안보리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가자지구 전체 주민 약 220만 명이 심각한 기아 위기에 처했다는 유엔 보고서도 나왔다.

4회 연기 끝 채택되나… 미국, '수정안' 찬성 시사

21일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이날 오전 예정됐던 안보리 결의안 표결이 미국 요청으로 보류되면서 22일 실시될 예정이다. 당초 18일로 예정됐던 표결이 연일 미뤄지더니 벌써 네 번째 연기된 것이다.

이 같은 일정 지연은 '미국이 거부하지 않을 만한 수준의 결의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이미 앞선 두 차례 안보리 결의안에 '나 홀로'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아랍권과 다수 국가가 요구하는 즉각적인 '휴전(ceasefire)' 표현에 반대하면서다. 유엔총회 결의안과 달리 법적 구속력을 갖는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는 미국을 포함한 상임이사국 5개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결의안 문구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이견을 좁히기 위한 이사국 간 막후 협상은 이날도 계속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수정된 최신 초안에는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인도주의적 접근을 즉각 허용하도록 긴급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각적인 교전 중지를 촉구하던 기존 문구의 수위를 낮춘 것이다.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한 이스라엘의 국제인도법 위반을 규탄하는 문구도 미국 압력으로 삭제됐다고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전했다.

가자지구 구호품 전달 과정 감독 권한을 이스라엘이 아닌 유엔이 갖도록 요구하는 문구도 후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무기 유입을 이유로 유엔에 감시 권한을 넘기는 것을 꺼려왔다.

이처럼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결의안 통과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결의안이 (수정된 대로) 제출된다면 우리가 지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19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보리 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19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보리 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휴전 빠진 결의안 의미 없다"… 가자 최악 기아 위기

하지만 이대로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미국은 비판을 면할 수 없어 보인다. 중동 분석가인 무인 라바니는 "결국 미국은 가자지구 봉쇄와 대량 학살에 투표한 것"이라며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게 제대로 된 생각이냐"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휴전 촉구가 빠진 결의안은 생사의 기로에 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가자지구 상황은 악화일로다. 이날 유엔이 발표한 식량안보 단계분류(IPC)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 전체 주민은 심각성 정도에 따라 분류한 5단계 중 3단계인 '위기' 상태 이상에 처해 있다. 이 중 최소 79%는 4단계 '비상'과 5단계 '기근' 상태로 분류됐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식량안보 위기 비율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식량 유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유엔은 지적했다.

하마스의 목소리는 더 크게 울리고 있다. CNN은 "가자지구 주민들의 불신을 샀던 하마스가 개전 이후 오히려 신뢰도와 영향력을 급격히 키웠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이 잇따른다"고 짚었다. 민간인 사망자 수가 늘어날수록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인기는 높아질 것이라는 경고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21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2만57명이 숨지고, 5만3,32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 이래 야기한 최대 규모 인명 피해 기록이다.

권영은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