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 상실을 치유하는 음악

입력
2023.12.23 04:30
19면

음악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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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보 패르트

아르보 패르트

사람들은 점점 더 빠르게 말하고 바쁘게 걷는다. 일상의 속도가 숨 가쁘게 돌아가니 집중력도 그만큼 쇠약해진다. 손에 쥔 스마트폰에 온 정신이 빨려 들어가고, 엄지손가락은 방정맞은 속도로 스크롤을 거듭한다. 무언가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탓이다. 불필요한 정보에 오염되어 산만함만 배가되기 십상이다. 이렇듯 분망한 속도에 허덕일 때, 그 얄팍한 깊이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나는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에 몰입하곤 한다.

패르트는 1935년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났다.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로 병합돼 공산당의 통제에 묶인 에스토니아의 처지는 그의 음악 세계에 짙은 영향을 드리웠다. 1968년에 작곡한 '사도신경(Credo)'은 발표되자마자 금지곡으로 낙인찍혔다. 종교를 앞세워 정치적 반동을 부추기고 난해한 음악적 실험이 난무한단 이유였다.

패르트는 이 부당함을 침묵으로 버텼다. 8년간 아무런 활동도, 어떤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다. 음악가로서 생존 반응이 멈추었던 시기, 그는 고요 속에 침잠하며 옛 음악을 파고들었다. 간결하고 압축된 재료를 활용하는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에 천착했는데, 특히 기욤 드 마쇼와 요하네스 오케겜의 교회음악에 매료됐다.

그는 자신의 작곡기법에 '틴티나불리’(Tintinnabuli)란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 교회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의미하는데, 패르트가 주목한 음악적 순간은 종소리의 울림이 멎은 후, 대기를 충만하게 채우는 잔향의 여운이었다. 패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나의 음표라도 아름답게 연주되면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가장 원초적인 음 재료, 즉 한두 개의 음표나 하나의 조성, 3화음으로 작업해 나갔다. 이렇게 얻게 된 음색은 마치 종소리와 같이 은은했다."

간결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패르트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현대음악은 복잡하고 난해해서 소수의 청중만 이해할 뿐이라는 일반적 통설을 불식시킨다. '누구에게나 친숙함'이 현대음악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 않다. 침묵 속에 곱씹은 영성의 깊이는 논리정연하게 구축돼 있다.

간결함은 그저 단조로운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에 몰두할 수 있는 집중력과 잇닿아 있다. 패르트의 투명한 음색은 멀티 태스킹에 기진맥진한 현대인의 습성을 되돌이켜 치유한다. 침묵과 고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패르트의 대표작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을 추천하고 싶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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