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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에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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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다. 운명의 날(4·10 총선)을 100여일 앞둔 탓일까 흘러간 군부독재, 쿠데타 얘기가 먹히는 분위기이다. 한쪽은 '서울의 봄'의 전두광(전두환) 세력이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독재와 겹친다고 한다. 다른 쪽은 하나회 세력을 척결한 것이 김영삼이고 자신들은 그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서울의 봄'의 '전두광'이나 영화 '아수라'의 '안남시장 박성배', '수리남'의 '가짜목사 전요한'이 모두 똑같은 한 사람을 연상시킨다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내용은 일부 허구들로 각색된 데다 별반 새로운 게 없다. 12·12가 쿠데타라는 것과, 직전 김재규의 10·26은 '내란목적 살인'으로 정승화 체포·연행은 '공모 혐의' 수사 차원서 불가피했다는 게 큰 틀이다. 이 대목에 오면 진보·보수가, 민주화 1세대와 이른바 586운동권의 논리가 복잡하게 꼬인다.
영화 '서울의 봄'에 김재규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완전히 두 쪽으로 양분된 모양새이다. 김재규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는 흔히 '욱하는 패륜아', '배은망덕한 권력 탐욕자'로 낙인찍혀 있다. 그렇다면 패륜아 김재규 일당의 반란 음모를 막은 전두환·노태우 듀오야말로 민주화 일등 공신이란 말인가.
'12·12쿠데타 주역=민주화유공자'라는 아리송한 등식은 결국 10·26과 김재규에 대한 실체적·역사적 평가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좌파나 우파나 전두환 합수부가 만들어낸 기본 프레임에 갇혀 놀아나는 꼴이다. '10·26은 평소 충성 경쟁에서 차지철에게 밀려 앙숙이던 김재규가 홧김에 차지철을 죽이면서 박정희를 암살하는 패륜을 저질렀는데, 사실은 김재규 자신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저지른 내란음모 시해(弑害, 임금을 죽인다는 뜻)'라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10·26을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도 10·26과 김재규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진 못한 것은 매한가지다. 전두환이 만들어낸 '합수부 수사 결과'가 그 뼈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역사의 모순, 이념의 인지부조화가 비롯된다. 유신헌법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전두환 합수부 수사와 군법회의 결과는 온전히 역사로 남기려 하는가. 이 부분 역사의 팩트체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2인자가 권력 쟁취를 위해 내란음모와 살인을 한 것과 '민주화를 위한 의거'를 감행한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김재규가 최후진술에서 밝혔듯이 '역사의 심판' 즉, '제4심'에 관한 것이다. 이 난제를 푸는 데는 세월이 좀 더 필요할 수 있다.
그에 앞서 서둘러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을 대목이 있다. 김재규의 행위가 적어도 '내란 목적 살인'은 아니었다는 점을 밝히기 위한 작업이다. '김재규 사건 재심'은 2020년 유족 등에 의해 이미 청구가 돼 있다. △비공개 군법회의 회부부터 △군사 법정 옆방서 보안사의 불법 녹음 △재판 중인 재판장에 수시로 쪽지 전달 △공판조서 허위 작성 등 재심 사유도 충분하다.
이는 박정희 암살에 관한 옳고 그름, 박정희의 공과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 바뀌겠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공이 월등히 앞선다. 김재규도 박정희를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지도자, 형님으로 모셨다.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은 어떤 측면에서 그런 것과는 별개이다.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더 큰 희생 방지, 진정한 선진 대한민국을 위한 '의거'라는 것이 김재규의 일관되고도 확고한 신념이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내란음모'인지 여부부터 명확히 밝혀 기록에 남기는 작업이 필수이다.
한 가지 상기하자면, 일단 김재규를 살려는 놨어야만 역사적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직후인 5월 20일 김재규의 대법원 선고 후 곧바로 나흘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정승화를 체포한 12.12쿠데타 성공으로 ‘서울의봄’은 끝이 났다고 영화에서는 말한다. 그러나 ‘서울의 봄’이 진짜로 끝난 것은 김재규가 급하게 이승에서 제거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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