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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비리그 ‘반유대 논란’, 무엇을 남겼나... “대학 내 문화 전쟁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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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이상의 것이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주 내내 미국 대학가를 들쑤셨던 ‘반(反)유대주의 논란’ 사태를 이렇게 정리했다. ‘반유대인 발언만으로 학생을 징계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적 주제는 지난 5일 아이비리그 명문대 총장 3명이 미 하원 청문회에서 ‘징계하겠다’라는 답변을 회피하면서 메가톤급 파문을 불러왔다.
이번 사태는 해당 총장 3명이 사퇴와 사과, 침묵 등 각기 다른 대응 방식을 취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고등교육 내 갈등 양상은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는 게 외신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지난 일주일간 캠퍼스에 휘몰아친 반유대주의 논란이 남긴 화두를 세 가지로 정리해 봤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사태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국 사회의 오랜 합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은 수정헌법 1조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한다. 혐오 표현 자체를 형사처벌하거나 규제하기보단, 혐오를 행동에 옮기는 ‘증오 범죄’를 가중처벌한다. 연방법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공립 대학뿐 아니라 사립 대학들도 이 원칙에 기반해 정책을 운영한다.
하지만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면서 이 원칙은 다소 무너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문회 발언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자 리즈 매길 전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이튿날 “유대인 학살을 촉구하는 것이 끔찍하다는 데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고 반성했고, 결국 9일 사임했다.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은 8일 “발언이 중요하다(Words matter)”며 사과했고, 12일 이사회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유대인인 샐리 콘블루스 매사추세츠공대(MIT) 총장은 사과 메시지를 내놓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테드 미첼 미국교육협의회 회장은 WP에 “대학 내 표현의 자유 축소 시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정 후원자의 입김에 휘둘리는 대학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펜실베이니아대와 하버드대가 사실상 고개를 숙인 건 유대계 미국인 자본가들의 입김에 밀린 탓이 크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5일 의회 청문회 이후 총장들에 대한 비판을 막후에서 조정한 인물은 유대인이자 미국 뉴욕 월가 헤지펀드의 ‘큰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최고경영자로 알려졌다.
실제 미국 대학들은 재정 상당 부분을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하버드대의 경우 재정 45%가량이 기부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길 전 총장 사임 배경에도 로스 스티븐스 스톤릿지 자산운용 최고경영자의 ‘1억 달러 기부 철회’가 있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억만장자 기부자들이 학문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NYT는 미국 보수 정치권이 오랫동안 진보적 성향의 대학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다며 “반유대주의에 대한 분노를 포착해 공격에 나섰다”고 표현했다. WP는 “공화당 의원들은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소위 명문 학교들이 좌파들의 수사법 온상이 됐다고 주장해 왔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법무부 대변인을 맡았던 사라 이스구도 미국 ABC뉴스에 “이 대학들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보수 세력의 ‘미국 대학 길들이기’로 활용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성소수자·유색인종 등 이슈에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혐오 정서’를 드러내던 보수 진영이 유독 대학 내 반유대 분위기만 문제 삼고 나선 건 진보 담론 약화를 위한 문화 전쟁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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