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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협주곡서 BTS '다이너마이트'까지… 음악 한계 뛰어넘는 고악기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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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수많은 명곡은 당대 사용하던 악기의 음량과 주법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자주 듣는 바흐의 건반 작품들은 '클라비어'로 통칭되는 쳄발로, 오르간, 클라비코드 등을 위해 쓰였는데, 작곡 이후에는 다성(여러 멜로디) 연주가 가능한 다양한 악기로 새롭게 해석돼 연주되곤 한다.
얼마 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만돌린 연주자 아비 아비탈과 고악기 앙상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Il Giardino Armonico·IGA)가 바흐의 '쳄발로 협주곡 d단조 BWV1052'와 '두 대의 쳄발로를 위한 협주곡 BWV1060' 등 쳄발로를 위한 작품을 재해석해 연주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만돌린은 1920년대 이후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악기. 이스라엘 출신의 뛰어난 만돌린 연주자 아비탈은 바흐의 작품은 물론 앙코르로 연주한 방탄소년단의 히트곡 '다이너마이트'까지 놀라운 감각으로 소화해 내며 무대를 장악했다.
협주곡 d단조는 바흐의 쳄발로 협주곡 중 규모도 크고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바이올린을 비롯한 화려한 악기들이 연주해 왔다. 그런데 21세기에 더 이상 효용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작은 악기 만돌린이 뛰어난 연주자 한 사람에 의해 새롭게 주목받게 된 것이다. 아비탈의 연주법은 기술적으로 탁월했다. 만돌린이나 기타는 줄을 튕기는 악기이기 때문에 하나의 음을 지속적으로 길게 유지하기 어렵다. 대신 현을 긁는 작은 도구인 피크를 써서 현을 여러 번 튕겨내는 트레몰로 주법으로 음의 길이를 늘이는데, 기타를 잘 아는 관객들은 아비탈의 기술(alternate picking)이 얼마나 뛰어난지, 밸런스가 얼마나 안정적이고 놀라웠는지에 대해 입을 모았다. 아비탈은 청년 시절 록밴드 활동을 하며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무대 위에서 그는 만돌린 연주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다.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레퍼토리를 확대하게 된 계기로는 IGA의 리더이자 최고의 바로크 리코더 연주자인 조반니 안토니니의 영향이 컸다. 이들은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아비 아비탈과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의 협주곡'이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이들은 이 음반을 통해 기존에 다른 악기를 위해 남긴 협주곡들이 만돌린과 리코더에 의해 어떻게 변신할 수 있는가, 그 음악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농축시켜 보여줬다. 바흐의 '두 대의 쳄발로를 위한 협주곡 c단조 BWV1060'은 바이올린과 오보에가 함께 연주하기도 한다. 앨범에서는 만돌린이 바이올린의 멜로디를, 리코더가 오보에 영역을 연주한다. 아비탈은 바흐가 쓴 바이올린 선율에서 만돌린의 여러 가능성을 발견한다고 하는데, 아비탈에 의해 또 어떤 작품들이 만돌린 곡으로 재탄생하게 될까.
안토니니는 바로크 리코더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은 연주자이자 오케스트라·오페라 지휘자다. 여러 면에서 혁신적 기획을 이뤄온 안토니니는, 지난주 무대에서 여전히 뛰어난 리코더 실력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악기 피리를 위해 쓴 조반니 솔리마의 작품 '쏘(So)'를 세계 초연했다. 서양의 고악기 앙상블이 한국의 고악기 피리와 음색을 조율하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에 경탄이 나왔다. 악기의 주법과 작품 연구에 대한 경계가 없는 이들에 의해 음악의 영역이 넓고 신비로워질 수 있음에 놀라웠다.
두 연주자들은, 자신들은 특정 악기 연주자가 아니라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특정 악기를 위해 쓴 기존의 작품만 연주하고 그 범위 안에만 머물게 되면 음악적 활동은 정체되거나 고립되기 쉽다. 또 보편성을 갖고 뿌리내리지 못한 악기는 유행에 따라 사장될 수도 있다. 어떤 작품이든 자신의 악기로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되면 음악의 세계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관점과 태도가 동양 악기인 피리와 방탄소년단의 메가 히트곡을 유연하게 수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신선한 발상과 뛰어난 연주력은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2,000여 관객들의 큰 환호와 뜨거운 갈채를 받았고, 평범해 보였던 작은 악기에 대해 새롭게 주목하게 됐다는 호평을 듣게 됐다.
악기의 가능성과 매력을 확장시켜 온 연주자들은 관객에게도 감동을 주지만 현존하는 작곡가들에게 큰 영감을 불어넣는다. 안토니니가 초연한 한국 악기 피리 협주곡은 이제 유럽으로 건너갔다. 한국의 콘서트홀 관객을 숨죽이게 만들었던 작은 악기와 낯선 음악의 조합은 앞으로 유럽에서 혹은 어디에서든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게 될까. 어쩌면 후대 관객들은 현재의 우리보다 만돌린과 리코더, 피리를 좀 더 친숙한 악기로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멋진 고악기 연주자들이 곳곳에서 이뤄내고 있는 크고 작은 음악적 반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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