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아서

입력
2023.12.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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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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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 차 한잔과 함께 일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젊은 청년이 다시 찾아왔다. 본인이 지금 하는 일을 그냥 하다 보면 어쨌든 뭔가 될 것이고, 평생 일을 하고 살 것 같은데 과연 내가 만족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확인해 보는 방법은 없는지를 묻는다.

사람마다 마음이 끌리는 일, 만족을 느끼는 일은 다 다른 것 같다. 가족의 기대와 엄마 친구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다는 직업을 가지려고 줄을 서고 있지만, 내심 내가 좋아하고 만족을 느끼는 것들은 따로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뇌 가운데에 변연계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세로토닌·도파민·아드레날린 등이 나오면서 사랑·슬픔·분노·기쁨의 감정을 느낀다. 이때 생기는 감정의 강도는 타고난 기질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어떤 이는 쉽게 화를 내지만 그저 차분하고 감정의 등락이 별로 없는 사람도 있다. 쉽게 지치는 친구도 있고,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이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데, 사회 속 인간으로서 그 감정을 다 드러내면서 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과 목적에 견주어 감정을 조율하고 사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감정을 조절하고 자제하는 곳이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주변의 상황과 기대를 종합해 내 미래 예측과 감정을 조절하고, 삶의 의미를 설정함으로써 오늘 살아가는 이유와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 삶의 의미와 동기 부여에 대한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곳도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우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보자.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인생 목표(Life Goal)와 직업적 목표(Career Goal)을 적어놓고 비교해 보는 것이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백지 한 장을 꺼내서 내가 어린시절부터 좋아하고 의미를 느끼던 것들을 다 적어보자. 했더니 기분 좋고 흐뭇했던 일들을 모두 기록해보는 것이다.

언젠가 새해 용돈을 받았던 기억일 수도 있다. 교단에 서서 발표를 하고서 받았던 선생님의 칭찬, 반장이 되어서 으쓱하던 일, 요양원에 가서 청소를 하고 온 일일 수도 있다.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거나 재해를 입은 다른 나라를 돕겠다고 나서서 여럿의 힘을 모으려 애쓰던 기억일 수도 있다.

이렇게 돈과 명예, 인정, 영성, 봉사, 헌신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을 다 적어보는 것이다. 30가지가 넘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한두 개에 그칠 수도 있다. 이때 더 좋고 나쁜 가치는 없다. 그저 내가 흥미를 느끼고 보람을 느끼는 것들일 뿐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써 놓은 것들에 내 맘대로 순위를 매겨보는 것이 다음에 할 일인데, 그 중 상위 3~5개에 속하는 항목이 내 ‘삶의 가치’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종이 한 장에는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라. 같은 과정을 거쳐서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3개 남짓의 일들을 정리해 보라.

내 삶의 가치와 하고 있는 일이 얼추 비슷하게 일치한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인생의 목적일 수도 있는 삶의 가치와 직업으로서의 일, 두 가지가 서로 가까울수록 지금 하는 일에 재미와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왜 그 일을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기도 쉬울 것이다.

사회 속에서 일하는 내 삶의 의미를 높이기 위해서는 나에게 의미 있는 직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세상에는 나에게 딱 맞는 일의 종류를 먼저 찾아낸 사람보다는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고 있을 때가 더 많다.

그러면 지금 하는 이 일 속에서 과연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보고, 내가 잘 하는 부분과 나의 강점을 알고 활용하면서 오늘의 활동을 내일의 성과에 연결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어떤 일이든 이걸 함으로써 사회 속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유대감과 소속감, 이타심을 가지는 것도 내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인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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