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위기 ‘지방 대학병원’ 어떻게 살리나?

입력
2023.12.17 08:20
수정
2023.12.18 15: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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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박상흠 순천향대 천안병원장(소화기내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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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근무하는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지역 주민이 주로 이용하지만 고향인 충남 예산과도 멀지 않아 친척이나 지인들도 많이 진료받고 그날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지방 대학병원 대부분이 이와 비슷하다.

지역 주민을 위한 지방 대학병원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려면 진료 교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상향 표준화된 진료와 함께 진료 현장에서 마주치는 난제를 풀기 위한 연구와 미래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 의무도 지고 있다. 업무량이 많아 시간에 늘 쫓기고, ‘번아웃(burnout)’ 상황까지 몰리지만 책임과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다.

그런데 지방 대학병원 교수가 부족한 데다 환자는 줄지 않다 보니 대부분을 진료에 쏟을 수밖에 없어 본연의 책무인 연구·교육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기란 녹록지 않다.

진료 교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내부·외부적으로 뒷받침이 중요하다. 내부적으로는 적정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거시·장기적 의료 정책 및 법적 보호다. 특히 외부적 요소는 경영진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새로운 현안이 대두될 때마다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일련의 외부적 요소로 인해 진료 교수들은 불안해졌고, 미래 의사인 의대생들은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을 기피하게 됐다.

몇 년 전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전공의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되고, 산부인과 교수가 재판을 받으면서 이들 진료과 전공의 지원이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방 대학병원들은 해당 진료과 교수들의 헌신으로 근근이 ‘기피과’가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응급 환자 의무 수용법’ 및 ‘면허 취소법’이 시행되면서 항상 100%를 유지했던 우리 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이 25%로 뚝 떨어졌다. 사직하겠다는 응급의학과 교수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오래된 우화가 생각난다. 성질 급한 농부가 논에다 벼를 심었는데 빨리 자라게 한다고 벼 포기를 조금씩 잡아 뽑아 올려 강제로 키를 키웠다. 하지만 다음 날 벼는 모두 죽어 농사를 망치게 됐다. ‘조장(助長·도와서 키운다)’이라는 말의 유래다.

진료 교수가 부족하면 환자 진료와 병원 운영이 어렵기에 경영자 입장에서는 교수들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내부 환경 마련에 노심초사한다. 그런데 최근 외부적 요소로 인해 가뜩이나 교수 확보에 심한 홍역을 앓는 지방 대학병원이 더 어려워졌다.

안정적인 진료 환경을 만들려면 두 가지 방책이 있다. 하나는 진료 환경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강제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영 리더십의 핵심은 구성원의 자발적 협조와 추종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열악한 의료 상황을 개선하려면 진료 의사의 자발적 협조가 가능하도록 법적 제재의 두려움 없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생존·번식에 가장 민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한다. 이를 위협받으면 곧바로 분노나 두려움이 나타나 싸우거나(fight) 도망하게(flight) 된다. 생명에 관련된 업에 종사하는 의사는 환자·보호자에게서 적잖은 감정 노동을 겪지만 의업(醫業)이라는 숭고한 가치 실현에 따른 보람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 고단함을 이겨낸다.

그런데 ‘모내기한 벼를 잡아당겨 키를 키우는 듯’한 상황이 의료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어 의사들이 두려움 없이 꿋꿋이 환자 진료에만 전념할지 심히 걱정된다.

박상흠 순천향대 천안병원장(소화기내과 교수)

박상흠 순천향대 천안병원장(소화기내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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