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동양과 서양의 예술 차이

입력
2023.12.18 04:30
27면

종교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며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1427년쯤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노베라성당 삼위일체에서 현존하는 최초의 원근법 그림

1427년쯤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노베라성당 삼위일체에서 현존하는 최초의 원근법 그림

르네상스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원근법의 창시자’ 마사초(이탈리아ㆍ1401∼1428)가 꼽힌다. 원근법에 의해 평면적 그림은 3차원 입체적인 옷을 입게 된다. 원근법은 특정 시점을 중심으로 그림을 구성한다. 즉 ‘보이지 않는 나’가 존재하는 것이다.

서양과 동양(동아시아)의 차이 중 하나가 '개인'과 '집단'이다. 이름을 쓸 때 서양에선 ‘이름→성’ 순이라면, 우리는 '성→이름' 순이다. 주소를 적을 때도 마찬가지다. 즉 개인을 중심으로 표현할 것인지, 아니면, 집단 속의 나를 위치할 것인지의 차이다.

서양인이 이름을 부른다면, 동양인은 관계 명칭이나 지위를 부른다. 아버지, 어머니, 형, 오빠 또는 부장님, 과장님 같은 경우다. 동양에서 이름을, 그것도 윗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서구와 달리 실례다.

해서 나는 ‘부모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직접 부를 일이 없는 것이 부모님 이름’이라고 말하곤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 성함을 말해야만 하는 상황이면, '위 자는 ○고 아래 자는 ○'라며 이름을 깨트리곤 하지 않았던가!

'서양의 개인'과 '동양의 집단'은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서양화엔 개인을 표현하는 초상화 비중이 높다면, 동양화에는 집단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산수화 비중이 크다. 이쯤 되면 서양과 동양 사이에는 제법 큰 관점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북송의 수도인 변경(개봉)의 청명절 풍경을 그린 청명상하도

북송의 수도인 변경(개봉)의 청명절 풍경을 그린 청명상하도

나는 미술과 미술사로 각기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즉 보는 것과 대상을 분석하는 것에 나름 익숙하다. 그러나 음악은 젬병이다. 이런 나를 콘서트에 초대해 주신 분이 있다. 사실 나는 대형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건축 구조였다. 특정 시점에 맞춰진 건물 배치, 원근법의 구현이다. 메인 자리는 피아니스트와 지휘자의 자리다. 이런 구조는 분명 음악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다원적인 평등 개념과는 배치된다.

동아시아 회화는 원근법 같은 특정 시점이 없다. 집단 안의 개인이기 때문에 특정 시점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북송의 장택단이 1120년경에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드론 촬영을 한 것 같은 모습이다. 소설의 '주인공 시점’(서양)과 '전지적 시점’(동양)의 차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런 차이가 서양과 동양의 음악에도 그대로 흐르는 것이다.

국악에는 박을 치는 집박(執拍)이 시작과 끝을 관장한다. 그러나 별도의 지휘자는 없다. 개인의 합이 전체일 뿐, 전체를 조율하는 개인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지휘자는 악기 없이 음악 전체를 통괄한다. 즉 원근법에 보이지 않는 내가 있다면, 음악에는 악기 없는 음악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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