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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무죄추정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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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27조 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형사소송법도 똑같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권리선언에서 유래됐고 모든 민주국가에서 널리 인정되는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무죄추정의 원칙이 얼마나 지켜지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 농구 감독의 승부조작 의혹 사건이 있었다. 의혹이 불거지자 그 감독은 즉시 농구계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그러나 1년 후 승부조작에 대해 검찰의 무혐의 결정을 받고 도박만 벌금 기소됐다. 하지만 도박 혐의도 3년 뒤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제서야 그 감독은 농구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정신적ㆍ금전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나 누가 책임을 졌는지는 알 수 없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의 마약 복용 혐의가 언론에 톱기사로 보도되면서 사회적 매장 분위기로 몰아가더니, 정작 마약 감정에서는 음성이 나왔다. 또 유명 축구 선수는 불법 촬영 관련 혐의로 국가대표에서 퇴출됐다. 그러나 아직 그 혐의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수사 과정은 피의자가 혐의가 있다는 전제하에 피의자가 유죄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미 수사 기관이 유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피의자로 입건했는데 피의자의 무죄 증거를 열심히 찾아줄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사 단계에서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지만 수사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곳은 어디까지나 검경 수사 기관이다.
기소돼 법정에 가서야 변호인이 증거로 제출된 수사 기록을 볼 수 있고, 수사 기관이 어떤 근거로 기소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수사기관에서 제출한 증거의 신빙성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형사재판의 과정이다. 무죄 판결도 적지 않게 나오며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한다. 결국 수사기관이 혐의를 두고 조사를 시작했다고 해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이 아니다.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을 수도 있고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중요한 이유는 막상 범죄 혐의를 받고 조사받기 시작하면 압도적으로 막강한 권력 앞에 서 있는 한 개인은 어디 기댈 데 하나 없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진다. 유죄의 조리돌림을 당하기 쉽다. 이때 무죄추정의 원리에 기대지 않는다면 피의자, 피고인은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할 충분한 기회를 보장받기 어렵게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법으로 보장되는 곳이 공직이다. 공무원은 구속되거나 직위해제되지 않는 한 자신의 업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야 해임된다. 직무 특성상 자기관리와 공정성이 중요한 공무원도 그러한데, 연예인, 운동선수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대고 사실 관계가 충분히 밝혀지기도 전에 사실상 퇴출시키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자신이 형사 사건 피의자가 된다고 생각하기도 싫겠지만, 그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으려면 무죄추정의 원칙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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