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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와 코로나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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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생명의 암호를 다시 쓰는 도구’. 2020년 프랑스와 미국의 여성 과학자 두 명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겨준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수상자들이 발견한 기술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생명의 암호, 즉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잘라낼 수 있는 이 기술엔 ‘유전자 가위’라는 별칭이 붙었다. 노벨상 선정 당시만 해도 “놀라운 잠재력을 지닌 기술”이었던 유전자 가위는 수상 3년 만에 영국과 미국 보건당국에서 치료제로 공식 허가를 받았다. 수상자들이 기술을 발표한 지 11년 만이다.
유전자 가위의 정식 이름은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크리스퍼는 세균에서 유전자(DNA)를 구성하는 단위 물질이 ‘특정 순서로 반복되며 군집을 이뤄 (유전자 사이사이에) 규칙적으로 끼어들어 있는 부위’를 뜻하는 영문 약자다. 세균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바이러스의 유전자 조각을 자신의 크리스퍼 사이에 끼워놓는다. 이후 같은 바이러스가 또 침입하면 전에 끼워놨던 조각을 인식할 수 있는 안내물질(가이드RNA)을 만든다. 가이드RNA는 유전자를 절단하는 단백질(캐스9)을 바이러스로 데려가 크리스퍼에 끼워둔 것과 같은 조각을 찾아내 잘라버린다. 크리스퍼는 세균이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면역시스템인 것이다.
유전자 가위는 이 원리를 차용했다.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인식하는 가이드RNA를 제작해 절단 단백질과 함께 세포에 넣으면 유전자에서 원하는 위치를 잘라낼 수 있다. 삽입도 된다. 삽입하려는 유전자 조각을 함께 넣으면 세포가 유전자의 절단된 부위를 복구할 때 끼어 들어간다.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편집’이 가능한 것이다. 이미 농작물 육종엔 이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가령 토양 속 중금속을 흡수하는 유전자를 잘라낸 쌀 품종은 일반 쌀보다 카드뮴이나 비소 함량이 낮다.
영국과 미국이 유전자 가위가 적용된 겸상 적혈구병 치료제를 허가했으니 의료 현장에 공급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론적으로 이 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가이드RNA가 가리키는 유전자를 바꾸면 여러 질병에 응용할 수 있다. 미국 루이스 카츠대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의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 치료 가능성을 원숭이 실험으로 확인했다. 미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유전자 가위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하고 있다. AI가 다양한 가이드RNA를 설계하고, 유전자의 어느 부위를 자를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예측해 낸다면 유전자 가위 치료는 더 빨리 확대될 것이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수록 차분하고 냉철한 시각이 필요하다. 애초 목표한 유전자 부위가 아닌 다른 곳이 잘릴 수도 있고, 제대로 잘린 유전자와 그렇지 않은 유전자가 뒤섞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체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과학자들은 아직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 생식세포 유전자를 편집해 유전자 변형 배아를 만들려는 시도를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쉽지 않다.
이달 초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코로나19 구세주로 등장한 mRNA 백신이 면역작용에 필요한 단백질 외에 엉뚱한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안전하다며 접종을 권했던 제조사와 전문가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 체내에서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과학의 매력 중 하나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대상으로 한 기술의 예측 불가능성은 매력이 아니라 위험요소일 수 있다. mRNA 백신도, 유전자 가위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건 과학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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