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재밌어야...이기호의 이 소설처럼 .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최근 이 칼럼에서도 다뤘던 권민경 시인의 에세이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에는 권민경 시인의 친구인 최민이 "우연히 책 한 권을 읽었는데 너무 웃겨서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결국 앉은 자리에서 모두 해치워 버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언급된 책이 바로 이기호 작가의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 1학년 때였고, 그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학에 입학하여 첫 과제로 제출한 소설을 기억한다. 그 소설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때는 소설이 되는 이야기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는 오직 아픔과 슬픔, 고통만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감정을 더 극대화해야 한다고, 그러려면 등장인물은 역경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그렇게 등장인물을 여러모로 괴롭히며 첫 소설을 썼다.
결과는 참담했다. 오로지 괴로움만을 위해 쓴 글이 재미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슬픔'과 '고통'을 다뤄야 하는데 재미가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재미'가 뭔데? 혼란 속에서 읽은 책이 바로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였다.
소설의 전반에서 묻고 있는 것은 소설의 기원이다. 날 때부터 글자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태초의 이야기는 타인의 목소리에서 온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기원, 즉 소설의 기원이다. 타인에게서 전해진 재미.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 우리는 또 해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에 중독된 사람들은 글자를 배운다. 소설을 읽는다. 세계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있다니. 슬픈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모두 그저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애초부터 이야기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소설의 기원은 이야기라는 그 단순함. 그것을 잊고 오래도록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글을 썼다.
이 책을 다루게 된 것은 친구가 나의 전자책(E북) 책장을 구경하면서였다. 나는 두 개의 E북 애플리케이션(앱)을 쓰는데 친구가 본 것은 강의 자료용 책들을 모아놓은 책장이었다. 어쨌든 친구가
"웬 이기호 소설가 책이 이렇게 많아?"
물었고 나는
"강의용이야."
라고 답했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나는 자신만의 '재미'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재미없는 글은 대체로 남에게도 재미없다. 그러니 이 책은 언제고 나만의 재미를 잊지 말자는 힘이 되어주는 책이다. 억지로 주인공을 괴롭힐 때, 혹은 괜시리 어려운 문장을 쓰고 나서, 나는 종종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본다. 정말 나에게 있어 재밌던 부분인가, 묻고 나면 몇 줄은 지우고 몇 줄은 또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 또한 소설을 쓰는 '재미'이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