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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색하면 보이는 것들

입력
2023.12.13 00:00
26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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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는 죽음을 생각한다. 고요하게 하강하는 눈과 함께 지난 한 해를 떠나보내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기라 더욱 그렇다.

난 겁이 많다. 밤길이 무서워 호신봉을 샀고, 현관문에 스마트초인종을 달았다. 족구하다 넘어져서 뇌진탕 걸리면 어쩌지라는 상상도 해보고, 다칠까 싶어서 헬스트레이너 선생님 없이는 높은 무게의 근력 운동도 하지 않는다.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다. 장례식을 가보지도 않은 유아 시절 때부터 그랬다.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이 죽자, 엄마한테 안겨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서럽게 울었던 기억도 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여전하다. 장례식장을 다녀오면 뒤숭숭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 의식은 어디로 가는지, 가족에 대한 기억이라도 가져가면 안 되는지, 대체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지 억울한 상념이 꼬리를 문다.

모골이 송연해지고 손바닥에 땀이 맺힌다. 죽음에 대한 설명 불가능한 공포는 본능이다. 통제 불가능한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만 생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원시부터 내려온 방어기제다.

아이러니하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대한 집착은 병리적 현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느끼면 뇌 속 편도체에 의존하는데, 이에 따라 동일한 자극에 더 크게 반응하고 더 높은 공격성을 보이며 감정 관리도 어려워진다고 한다. 실제로 여러 불안장애 환자들에게서 과도하게 활성화된 편도체가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원시에는 맞고 현대에는 틀리다. 활성화된 편도체를 무기로 사주경계해야 하는 원시와 달리 지금은 침착한 집중력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편도체를 안정화시켜야 하고,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결국, 두려움에 대한 뇌의 본능적 기제를 극복해야 더 생존에 유리한 셈이다.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죽음 하면 떠오르는 설명 불가능한 두려움을 벗어내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미지의 존재인 죽음은 정복은커녕 파악할 수도 없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영화처럼 내 뇌를 인공지능으로 만들 수도 없고 신체를 교체할 수도 없다. 번뇌 탈출을 고민할수록 더욱 깊이 잠겨 들어간다.

잠겨 든 끝에 다다른 결론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했다. 그저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과거에 가지 않은 길, 불확실한 미래, 불안정한 경제적 토대 그리고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숨 쉬기보다 그저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집착은 고민을 낳고, 집중은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7년 만의 4번째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금자탑 앞에서 "0대 3 패배에도 웃고자 했다"는 프로게이머 페이커의 침착한 마음가짐이 귀감이다. 승리에 대한 집착과 패배에 대한 두려움보다 과정의 집중을 선택했고 우승이 그를 따라왔다.

날마다 충실하게 보내기로 했다. 출근하는 직장, 만나는 사람들, 주어진 과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언젠가 숙명처럼 다가올 죽음에 대한 근본적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며 언젠가는 사그라들 내 삶이 조금이라도 섬광처럼 빛나게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연말을 생각하니 죽음이 보이고, 죽음을 생각하니 지금이 보인다. 부디 새해에는 유한한 삶 속에서 결과에 대한 집착과 불확실성에 대한 병리적 두려움보다 지금에 더 몰입하고 더 많이 배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구현모 뉴스레터 어거스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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