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협 근거로 유족에 주는 사망퇴직금은 고유재산"... 채무변제 대상서 제외

입력
2023.12.12 15:48
수정
2023.12.1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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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단협에 명시된 사망퇴직금 성격 첫 규정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자의 사망퇴직금을 유족에게 주기로 정했다면, 이는 상속재산이 아닌 고유재산(원래부터 가진 재산으로 상속·증여로 취득한 재산과 구분됨)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농협은행 직원이었던 A씨 유족이 농협은행과 A씨의 채권자들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유족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16일 확정했다.

농협은 단체협약을 통해 '사망으로 인한 퇴직자의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한다'고 정해 뒀다. 이 조항에 따라 농협은 2012년 4월 숨진 A씨에게 1억여 원의 사망퇴직금을 지급해야 했다.

여기서 문제는 이 사망퇴직금이 상속인(유족)의 '상속재산'이냐 '고유재산'이냐 하는 것이었다. A씨 유족은 A씨가 남긴 '상속재산' 내에서 채무를 갚는 조건으로 상속한정승인(한정상속)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A씨의 사망퇴직금 중 절반은 압류돼 2013년 12월 채권자들에게 순위대로 배분됐고, 나머지 퇴직금은 농협이 보관했다.

이에 유족은 "사망퇴직금은 상속재산이 아닌 고유재산이므로 전액을 달라"며 2017년 1월 농협과 채권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망퇴직금이 고유재산이라는 판단을 받으면, 상속재산과 다르게 채무변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고인의 빚을 갚는 데 쓰지 않아도 된다. 1·2심은 모두 이를 고유재산으로 보고 유족들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대법원은 "단체협약에서 사망퇴직금을 근로기준법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하기로 정했다면, 개별 근로자가 별도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한 수령권자인 유족은 상속인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사망퇴직금을 취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망퇴직금도 일종의 퇴직금이므로 근로기준법상 미지급 퇴직금의 지연이율 20%에 따른 지연손해금까지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망퇴직금은 원칙적으로 해당 유족의 고유재산이라는 법리를 최초로 명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단체협약에 수령권자가 명시돼있지 않거나, 수령권자의 범위가 유족의 생활 보장과 복리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안 등에는 이 법리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조건을 달았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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