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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력평가, 한국 경제 희망의 불 밝혔다![홍춘욱의 경제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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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어떤 나라의 미래를 점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표는 인구 통계다. 예를 들어 합계출산율이 지속적으로 4~5명 이상 기록하는 나라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돈이 소진되기에, 교육이나 수리시설의 개선 같은 장기 과제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출산율이 너무 낮아도 문제가 된다. 한국이나 홍콩처럼 합계출산율 1.0명을 밑돌면 내수시장이 위축되고 노인 인구의 부양 문제가 재정을 억누를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인구의 절대적 수준보다 교육 수준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노동력이 풍부하다고 해도 그들 대부분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상태라면 경제성장에 크게 도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섬유나 신발, 의복, 가발같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부문이 경제의 주력일 땐 교육 수준이 낮아도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 위주로 경제를 재편하고, 정보통신 산업처럼 혁신을 주도하는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선 잘 교육받은 인재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잘 교육받은'이라는 기준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문해력을 갖추고 있어서 매뉴얼을 통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익힐 수 있고 기초적인 영어 회화가 가능해 선진국의 기술자들에게 낯선 기계장치의 작동법을 배우는 능력을 뜻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 주요국 25~34세 젊은이들의 학력 수준을 비교해 보면, 한국이 가장 높은 고등학교 진학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중등 교육을 시킨 나라는 슬로베니아나 러시아 등 극히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반면 최근 인도와 중국은 14억 명이 넘는 거대한 인구를 자랑하지만, 젊은이들의 60% 이상이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느끼는 독자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러시아는 고등학교 진학률이 거의 100%에 이르는데,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첨단무기의 생산이 사실상 중단된 것은 물론 세계 2차 대전 때 사용하던 무기를 꺼낼 정도로 생산력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가? 이 반론에서 확인할 수 있듯, 중요한 것은 교육의 질이지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질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답한 것이 바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3년마다 진행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이다. 2000년부터 OECD는 만 15세 학생(중3~고1)의 수학, 읽기, 과학 과목을 대상으로 국제인 성취도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PISA 점수와 경제성과 사이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연관이 존재한다. PISA 점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장기적인 성장률은 높아지며, 반대로 PISA 점수가 낮은 나라의 성장률은 둔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명을 내놓는다. 첫 번째는 학생들의 과학 및 수학 능력이 정보통신 혁명에 필요한 필수적인 소양을 잘 보여주며, 다른 하나는 국가가 얼마나 교육 수준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2022년 시행된 PISA에서 한국 학생들은 탁월한 성취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다른 나라 학생들은 코로나19 기간 중 심각한 부진을 기록했지만,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같은 극소수의 동아시아 나라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향상됐다. 특히 한국 학생들은 2012년 이후의 성적 부진 흐름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더욱 축하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학자들이 한국 학생들의 학력저하 현상을 우려해 왔음을 감안할 때, 최근 발표된 지난해 PISA 결과는 가장 반가운 소식 중 하나다. 이 놀라운 성취를 달성한 세 주체에 무엇보다 감사할 일이라 생각한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교육에 투자했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노력, 그리고 애정을 가진 부모님들의 관심이 본인의 노력과 시너지를 발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한국 경제엔 문제가 없을까?
필자는 한 가지 문제만 더 해결되면,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남은 과제는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 기관의 성취도 문제다. 최근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서 발표한 ‘2023년 세계혁신지수’ 발표 결과, 한국의 순위가 2022년 6위에서 10위로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수는 각국의 다양한 지표를 평가해 혁신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측정한다. 한국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인구당 특허출원 건수 같은 활동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지만, 비즈니스 환경 및 고등교육 기관 평가에서 낮은 순위를 받았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시키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5년 단위로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 정치 환경에서, 먼 미래를 위해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국제 수준으로 맞추는 노력을 기울일 인센티브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교육 기관 육성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PISA에서 확인되듯, 세계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에 대한 지원을 더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혁신 역량은 크게 향상될 것이라 생각한다.
글로벌 대학과의 경쟁에서 한국이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 무엇보다 교육예산의 조정이 필요하다. 2024년 교육 분야에 무려 89조7,00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되어 있지만, 이 가운데 고등교육 기관을 위한 지원은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의 투입을 살펴보면, 2019년 미국 달러 기준으로 초등학생은 1만3,341달러인 반면 대학생은 1만1,287달러에 불과하다.
물론 나이가 어릴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이 더욱 큰 성취를 거둔다는 것은 이미 교육경제학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즉 투자의 효율 면에서 아동에 대한 지원이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앞으로도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학령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것을 감안할 때 1인당 투입되는 교육비가 앞으로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감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예산이 앞으로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1인당 투입되는 교육비는 7,000만 원 이상 수준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1인당 투입되는 교육비가 높아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초등학생에게 컴퓨터를 제공하는 등의 투자가 꼭 학업성적의 향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재원을 고등교육 분야 지원으로 돌리는 것이 투자 효율 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라 본다. 학령인구 감소의 파고가 점점 밀려들다 보니 대학들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어렵다. 대학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자구노력을 취할 때, 정부가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고등교육의 성취를 올리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의 위기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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