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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억 원 투입한 해군 초계기, 제대로 쓸 기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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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최근 국방부 공동취재단이 미국을 찾아 우리 군이 도입할 예정인 차세대 해상초계기 P-8A ‘포세이돈’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한국 해군용 포세이돈은 현재 4호기까지 출고됐고, 내년까지 2대를 더 제작해 2025년부터 한국에 인도될 예정이다.
미 업체가 포세이돈 생산 라인을 공개하면서 언론은 이 항공기의 도입으로 우리 해군의 ‘수중 킬체인’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수중 킬체인이란 핵미사일을 장착한 북한 잠수함이 수중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해상초계기로 이를 사전에 탐지해 선제적으로 타격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포세이돈이 탑재하고 있는 각종 첨단 센서와 장비들의 성능을 생각해보면 군에서 말하는 수중 킬체인 능력이 강화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포세이돈이 어떻게 운용될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벌써부터 한숨만 나온다.
해군은 지난 2021년, 해군항공사령부 예하에 부대를 창설하고 포세이돈 도입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부대는 포항공항에 주둔하는데, 이에 따라 신규 도입되는 포세이돈도 자연스럽게 포항에 배치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포항공항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처음 포세이돈 도입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미 기지가 포화상태라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었다. 자동차로 따지면 주차장에 해당하는 계류장으로 사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적이 나오자 해군은 “인근 군 골프장을 밀어서라도 계류 시설을 확보하겠다”며 포세이돈 도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었다. 그러나 군 골프장은 아직도 정상 운영 중이고, 지금은 계류 공간 확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바로 활주로 규격이다.
지난 11월 20일, 미국 하와이 카네오헤만 해병항공기지에서 착륙을 시도하던 해군 포세이돈 한 대가 활주로를 이탈해 바다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활주로에 착지한 항공기가 충분한 제동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문자 그대로 활주로에서 튀어나간 전형적인 ‘오버런’ 사고였다. 항공기는 이륙할 때도 충분한 활주거리가 필요하지만, 착륙할 때도 충분한 제동거리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기체가 무거울수록 더 긴 활주로가 필요해지는데, 기체에 비해 활주로가 충분하지 않으면 이런 오버런 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포항공항은 군사기지인 동시에 민간공항이다. 이곳은 길이 2,133m, 폭 46m의 활주로가 설치돼 있어 중형 여객기 이착륙이 가능한 상태다. 실제로 국내 저비용 항공사 중 일부가 이곳에 중형 여객기인 보잉 737 기종을 취항시키고 있다. 포항공항에 이미 737 기종이 취항 중이니 737 기반인 포세이돈도 운용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현재 국내 J항공사가 포항공항에 취항시킨 여객기는 737-800 모델이다. 189석 규모의 이 여객기는 자체 중량 41.5톤, 최대이륙중량(MTOW) 79톤인 모델이다. MTOW란 연료와 화물을 최대로 실은 상태의 중량인데, 737-800 모델은 이 상태에서 2,300m의 이륙 활주거리가 필요하다. 포항공항의 활주로보다 훨씬 긴 거리지만, 그럼에도 이 기종이 포항공항에서 뜨고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이 여객기가 단거리 노선에만 투입되기 때문이다. 국내선은 비행거리가 짧기 때문에 편도 비행에 600갤런(약 2톤) 안팎의 연료가 들어간다. 예비연료를 감안하더라도 최대 연료탑재량인 29톤까지 실을 일이 없기 때문에 MTOW보다 훨씬 가벼운 중량으로 짧은 활주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하다. 737-800의 최대 정원인 189명의 승객을 태우고, 연료와 수화물을 충분하게 실어도 55~60톤 수준으로 중량 통제가 가능하다.
문제는 포세이돈이다. 포세이돈은 기본적으로 737-800 기종을 바탕으로 삼고 있지만 군용 규격을 맞추기 위해 일부 부품이 변경되고 내부에 임무장비가 추가되면서 자체 중량이 46.6톤까지 늘어났다. 장시간 바다 위를 날며 넓은 범위를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연료 탑재량도 최대 34톤까지 늘어났고, 잠수함을 잡기 위한 소노부이, 잠수함을 찾았을 때 이를 공격하기 위한 어뢰 무장 등을 탑재하기 위해 최대 20톤의 각종 추가 장비도 실어야 한다. 이 때문에 포세이돈의 MTOW는 2,900m까지 늘어났다. 앞서 소개한 미 해군 사고기체의 경우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8톤의 연료가 남아 있었다. 승무원과 소노부이 등 각종 임무 장비 중량까지 포함하면 사고 당시 미군 포세이돈의 중량은 앞서 소개한 국내선 운항 737 여객기의 최대 중량과 비슷한 50톤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카탈로그 데이터상 MTOW보다 20톤이나 가벼운 상태였고, 착륙 제동거리는 이륙 활주거리보다 훨씬 짧음에도 불구하고 2,400m 활주로에서 오버런이 발생한 것이다.
하와이의 포세이돈 오버런 사고는 우리 해군에 도입될 포세이돈 초계기도 연료와 무장을 만재하고 카탈로그 데이터에 제시된 수치만큼 해상초계 임무를 수행하려면 충분한 길이의 활주로를 갖춘 기지에서 운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우리 해군이 포항공항에 포세이돈을 배치해 제 성능을 내면서 운용하려면 포항공항의 활주로를 지금보다 최소 800m 늘려야 한다.
그러나 포항공항은 활주로 전후방에 빼곡하게 민가가 들어서 있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관광지이고, 인근에 대규모 제철소까지 있다. 주변 부지를 매입해 활주로를 연장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 포세이돈이 포항 활주로에서 이륙하려면 연료와 탐지장비·무장 적재량을 크게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는 10시간 이상 체공하며 넓은 바다를 감시할 수 있다는 포세이돈이 ‘반쪽짜리 초계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의 임무 장비를 탑재하고 50톤대 중반의 중량으로 착륙하는 상황을 생각하더라도, 포항공항의 활주로가 이번에 사고를 낸 하와이 기지 활주로보다 300m나 짧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항에서의 오버런 사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하와이에서의 오버런은 초계기가 바다에 빠지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활주로 전방에 민가와 대형마트, 심지어 대형 제철소까지 있는 포항에서의 오버런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해군이 포항에 포세이돈을 배치하면 이착륙 중량 제한 문제로 연료와 무장을 충분히 실을 수 없어 북한의 전략잠수함 대응 임무 수행이 매우 어려워진다. 포항에서 원산만 인근까지는 왕복 800㎞에 달하는데, 연료와 무장 탑재량이 부족하면 작전 해역에서 몇 바퀴 돌고 곧바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군도 대책을 고민 중이다. 포세이돈 운용 거점을 포항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광주·목포공항을 무안공항으로 통합하고, 무안공항의 활주로를 현재의 2,800m에서 3,160m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무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었다. 무안공항은 취항 항공기 숫자와 이용객에 비해 면적이 대단히 넓고, 대규모 확장 공사와 고속도로·KTX 연결 공사 등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포항공항과 비교해 위도가 크게 낮지 않아 대북 해상초계 임무를 수행할 때 비행거리가 늘어나는 등의 문제도 적다. 그러나 무안공항은 해당 지자체가 군 기지 이전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포세이돈 입주가 불가능해졌고, 현재는 제주기지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제주에 포세이돈을 배치할 경우, 포항에서 운용할 때보다 작전 수역까지 비행 거리가 2배 이상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초계 시간과 임무 장비 탑재량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 요소 중 하나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정책결정권자들은 그 위협에 대응하겠다며 3,0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 초계기를 사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인프라 준비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비로 지은 공항을 대한민국 전체의 안보를 위해 사용하겠다는데 이를 반대하는 지역 정치인들까지 등장했다. 우리 해군의 포세이돈 데뷔 임박 소식에 모처럼 마련한 전략자산이 위험해질까 봐 노심초사하던 북한 지도부는 ‘남조선’의 이 황당한 상황을 보며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부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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