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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 논란 속 사임·사과…미국 명문대 총장들 줄줄이 백기

입력
2023.12.10 20:00
수정
2023.12.14 14:1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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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서 말 흐린 펜실베이니아대·하버드대총장
월가 등 유대계 '기부금 압박'에 각각 사임·사과
해석 분분 '인티파다' 구호, '유대인 학살'로 간주

클로딘 게이(맨 왼쪽부터) 미국 하버드대 총장과 리즈 매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이 5일 워싱턴 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주최 반유대주의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클로딘 게이(맨 왼쪽부터) 미국 하버드대 총장과 리즈 매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이 5일 워싱턴 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주최 반유대주의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 대학가를 뒤흔든 반(反)유대주의 논란이 결국 소위 명문대 총장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미 하원 청문회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도중, 과격한 이스라엘 비판 구호가 나온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의원들 질의에 다소 모호한 반응을 보인 게 여론의 뭇매를 맞자, 백기를 든 것이다. 9일(현지시간) 리즈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사임했고, 전날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도 같은 이유로 공식 사과문을 냈다.

미국 언론들의 평가는 해당 총장들이 표현의 자유 등을 들어 ‘유대인 혐오’에 단호히 선을 긋지 못한 탓이 크다는 게 지배적이다. 다만 일각에선 “월가 거물 등 유대계 큰손들이 기부금을 철회하겠다는 압박에 들어가자 대학들도 꼬리를 내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유대 논란'에 말 흐린 총장들...사퇴 압박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대 이사회는 9일 “매길 총장이 자발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5일 하원 교육·노동위원회가 주최한 반유대주의 청문회에서 했던 발언이 불러온 후폭풍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해당 청문회엔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총장들도 함께 출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후 학내 시위에서 쓰인 ‘인티파다’ 구호와 관련, 학교 측이 징계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아랍어로 ‘봉기’라는 뜻인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투쟁’을 의미하는데, 일부 유대인은 이 구호에서 폭력을 연상한다고 NYT는 설명했다.

공화당 소속 엘리즈 스테파닉 의원은 청문회에서 해당 구호를 ‘유대인 학살’로 간주해 따져물었다. “유대인을 학살하자는 과격한 주장은 대학 윤리 규범 위반이 아니냐”는 질문에 매길 총장은 “위협이 실제 행동이 되면 괴롭힘(규범 위반)이 될 수 있다”고만 답했다. ‘예, 아니오로 답하라’는 추궁에도 그는 똑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게이 하버드대 총장과 샐리 콘블루스 MIT 총장도 비슷했다. 민간인 학살 규탄이라는 시위 맥락을 고려하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답을 흐렸다. NYT는 “청문회에서 변호사처럼 답변해 대학의 유대인 학생, 교수진, 졸업생에게 도덕적 명쾌함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14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팔레스타인 지지와 자유 발언을 위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앞서 컬럼비아대는 대학 정책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학생단체 2곳에 정직 처분을 내렸다. 뉴욕=AFP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팔레스타인 지지와 자유 발언을 위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앞서 컬럼비아대는 대학 정책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학생단체 2곳에 정직 처분을 내렸다. 뉴욕=AFP 연합뉴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백악관마저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 살해를 두둔한 것”이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결국 게이 총장이 8일 “의원들 질문이 쏟아지며 집중력을 잃었다. 유대인에 대한 폭력 선동은 하버드에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공식 사과했다. 청문회 당시 가장 긴 언쟁을 벌였던 매길 총장도 9일 사표를 냈다.

하지만 비판 여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날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유대인뿐 아니라 어떤 인종에 대한 학살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칼럼니스트 제니퍼 루빈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대학 총장들이 인성 시험에서 낙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마이크 존슨(맨 왼쪽) 미국 하원의장이 5일 워싱턴에서 유대인 여대생 두 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이 최근 겪은 반유대주의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마이크 존슨(맨 왼쪽) 미국 하원의장이 5일 워싱턴에서 유대인 여대생 두 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이 최근 겪은 반유대주의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유대계 큰손들' 기부금, 압박됐나

그러나 한편에선 해석이 갈리는 구호를 무조건 ‘유대인 학살’로 간주한 흐름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실제 이번 사태는 미국 버몬트주에서 팔레스타인계 대학생 3명이 총에 맞거나, 지난달 하버드대 로스쿨 학술지가 가자지구 민간인 학살을 다룬 논문 게재를 취소해도 ‘반팔레스타인’ 규탄 없이 잠잠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사회가 학살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정치·경제적으로 입김이 센 유대계 거물들 눈치를 보고 있다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리는 이유다.

총장들이 고개를 숙인 것도 말라가는 돈줄 때문이었을 공산이 크다. 매년 최대 수억 달러를 기부해 왔던 하버드대 졸업생 수백 명은 지난 5일 ‘1달러만 기부’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펜실베이니아대도 7일 스톤리지자산운용의 로스 스티븐스 최고경영자(CEO)가 매길 총장 발언을 문제 삼으며 1억 달러(약 1,300억 원) 기부를 철회하겠다고 밝히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기준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는 학술 운영 예산의 각각 12%와 17%를 기부금에 의존했다고 WSJ는 전했다.

이유진 기자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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