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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석 달 지난 밀키트… 바꿔 달랬더니 소비기한 표기 떼고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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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경기 김포시에 사는 직장인 유재영(38)씨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인 지인에게 보양식을 선물하려다가 머쓱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달 13일 전남 완도군의 죽 제조업체에서 수만 원짜리 전복죽을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지인에게 보냈는데요. 식재료와 양념이 조리 직전 상태로 포장된 밀키트 형태라, 거동이 편치 않을 환자가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선물로 제격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감사 인사 대신 "고맙지만 먹은 걸로 칠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품에 '유통기한 2023년 8월 8일'이라고 적혀 있었던 겁니다. 기한이 3개월이나 지난 음식이 배달된 것이죠.
유씨는 속상했지만 업체에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배달해 달라"며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일주일 뒤 지인에게 새로 배달된 전복죽 밀키트에는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적용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기한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 소비기한 표시란에 '별도 표기일까지'라고 적혀 있었지만 포장 어디에도 날짜 표기는 없었습니다. 스티커를 뗀 듯한 자국만 있을 뿐이었죠. 당연히 언제까지 먹어도 괜찮은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가공식품이 아니라서 상하기 쉬울 텐데 섣불리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한참 지나버린 유통기한 때문에 한 번, 확인 불가한 소비기한으로 또 한 번. 지인에게 면목 없어진 유씨는 업체에 전화를 걸어 따졌지만 담당자는 적반하장이었습니다. "우리 같은 영세업자한테 그런 것까지 깐깐하게 요구해야겠냐. 그냥 먹으면 안 되냐"며 되레 언성을 높였습니다. 화가 난 유씨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불량식품 신고를 했고, 식약처와 완도군청이 조치에 나섰습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밀키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유씨와 같은 사례를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식재료가 조리하기에 간편하면서도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상태로 포장돼 있다 보니 섭취해도 좋은 기간을 정확히 표기하고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식약처가 지난 6월 밀키트 무인 판매점을 점검한 결과 소비기한 경과 제품을 판매한 7곳이 무더기로 적발됐습니다. 소비기한을 속이거나 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하면 식품위생법 44조(소비기한 경과 제품 판매), 식품표시광고법 4조(표시 방법 위반) 위반으로 처벌받습니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일부 소규모 업체 중에는 아직도 소비기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식품 판매 기한을 철저히 지키는 건 제조·유통업체의 의무이지만, 소비자도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기한 확인에 소홀하면 안 됩니다. 특히 식품 기한 표기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합니다. 1985년부터 40년 가까이 사용해온 유통기한을 대신해 올해 1월 1일부터 소비기한을 표기하게 됐거든요.(올해는 유예기간이라 유통기한 표기 포장지를 일부러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소비기한의 특성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유통기한은 제조업자 중심의 표기 방식이고, 소비기한은 소비자 중심 방식입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소비기한을 쓰고 있는 와중에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유통기한 사용을 고집했습니다. 하지만 더 먹을 수 있는 식품인데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대량 폐기하면서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소비기한으로 바꾼 것이죠.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으로, 식품 상태가 변질되는 데 걸리는 '품질안전한계기간'의 60~70%로 설정합니다. 반면 소비기한은 보관 방법을 잘 지켰을 경우 먹기에 안전한 기간입니다. 유통이 아닌 섭취가 판단 기준이라 소비기한은 품질안전한계기간의 80~90%로 잡습니다. 예컨대 유씨가 선물한 전복죽 밀키트의 품질안전한계기간이 10일이라면 유통기한은 6, 7일이지만 소비기한은 8, 9일이 됩니다.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길죠.
실제 식약처가 제시한 밀키트(간편조리세트)의 기준 소비기한은 8일로 유통기한(6일)보다 이틀 늘어났습니다. 원래 소비기한은 각 제조업체가 실험을 통해 정해야 하는데 중소업체는 비용 때문에 기한 설정 실험을 하기가 부담스럽죠. 이를 감안해 식약처는 지난해부터 식품유형별 소비기한 참고값을 순차적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대체되면 식품이 폐기되지 않고 판매되는 기간이 길어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같은 식품인데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이 연장될 리는 없죠. 식품 기한이 끝나는 시점부터 제품이 변질되는 시점까지를 '보관 가능 기간'이라고 한다면, 소비기한 적용 식품의 보관 가능 기간은 유통기한 적용 식품보다 짧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밀키트처럼 자연식품에 가깝게 유통되는 제품이라면 이 점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유통기한을 두고 '잘 보관한다면 기한이 조금 지나더라도 먹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텐데요. 하지만 소비기한은 보관 가능 기간이 짧은 만큼 보다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겠습니다. 전문가들도 밀키트 같은 종류의 식품이라면 "반드시 소비기한을 지켜서 먹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하 교수는 "밀키트는 냉장고에 넣어도 하루이틀 정도밖에 못 간다"며 "소비기한은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지키자'는 식품업체와 소비자의 약속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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