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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사람 대접'해주기...그런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23.12.08 2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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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법학회 '지구법학'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유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유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도는 국제적 멸종 위기종인 제주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법인 도입을 위한 법 개정 절차를 밟고 있다.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 같은 비인간 존재에 인간과 동등한 법적 권리, 즉 법인격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골자다. 앞으로 누군가가 제주남방큰돌고래를 마구잡이로 포획하거나 해치면 사람에게 한 것과 똑같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생태법인 도입을 통해 제주남방큰돌고래가 '인간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면 서식지가 훼손되는 등의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후견인을 통해 소송을 걸 수도 있다.

지구법학·지구법학회 지음·김왕배 엮음·문학과지성사 발행·478쪽·2만5,000원

지구법학·지구법학회 지음·김왕배 엮음·문학과지성사 발행·478쪽·2만5,000원

책은 이렇게 '인간'이 아니라 '지구'가 중심인 새로운 법제도와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구법학' 도입의 시급성을 일깨운다. 급진적 주장은 인간의 권리만 강조하고 자연은 늘 지배 대상인 현재의 시스템으론 코로나19 팬데믹, 기후 위기 등 인류가 직면한 전 지구적 생태 위기를 막지 못한다는 위기 인식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 중 하나일 뿐이고 번식할 권리도 인간이 아니라 지구로부터 주어진다는 사고의 전환이 지구법학의 출발이다. 이 변화를 위해선 국가와 영토를 구분 지어 이동을 제한하는 민주주의도 극복의 대상이다. 책을 쓴 법학, 사회, 정치학 교수들은 생태민주주의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입법부와 행정부가 힘을 모아 인간과 비인간 주체에 치명적 피해를 끼칠 수 있는 기성 시스템을 점검하는 '심의적 미래부' 창설로 지구의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구체적 대안도 내놓는다.

환경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다며 세계 각국 정부가 쏟아내는 그린뉴딜 정책은 성장주의를 탈피해 지구와 인간의 상호 유익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시대의 전환을 위해 자기중심성을 버린 비판과 지구법학을 매개로 한 새로운 상상력은 그래서 시의적이고 흥미롭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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