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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의 공포, 전화벨만 울려도 '쿵' 떨어지는 가슴

입력
2023.12.11 04:30
25면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 성취도 크지만, 한국의 중년은 격변에 휩쓸려 유달리 힘들다. 이 시대 중년의 고민을 진단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해법들을 전문가 연재 기고로 모색한다.

법률 : <6> 갑작스러운 실직... 내 아파트 지키기

파산ㆍ회생ㆍ워크아웃

파산ㆍ회생ㆍ워크아웃


실직ㆍ폐업에 급격히 무너지는 중년
파산ㆍ회생, 사회적 ‘낙인’ 아닌 ‘기회’
스스로 비난 말고 사회 제도 활용해야

이주석(가명·53)씨는 평범했던 삶이 최근 2년 사이에 이토록 급격하게 바뀔지 상상도 못 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이씨는 은행 대출을 받긴 했지만 번듯한 아파트도 마련하고, 아이들 사교육에도 매달 200만 원씩 지출할 정도로 탄탄한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다니던 여행사는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늘어나는 학원비와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카드 대출로 돌려막기까지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늘어난 빚 때문에 제2금융권 대출이 막혔고, 카드 대출도 연체됐다. 급기야 재직하던 여행사는 경영난으로 폐업해 실직자 신세가 됐다.

궁지에 몰린 이씨는 필자에게 “전화벨이 울리면 빚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인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란다”며 “방법이 없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필자는 개인회생 제도를 권유했지만, 그는 “회생은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평생 모아 마련한 아파트까지 잃는 것 아니냐?”며 두려워했다.

연령별 1인당 대출ㆍ소득 규모

연령별 1인당 대출ㆍ소득 규모

이씨의 사례는 상당수 중년 세대가 직면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2023년 9월 현재, 중년층 대출액이 다른 세대와 비교해 최고 수준”이라며 “은퇴할 경우 연체율이 급격히 상승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진퇴양난에 놓인 이씨가 아파트를 지키면서 빚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빚을 탕감받기 위한 국가 제도에는 △회생과 △파산 절차가 있다. 중년의 경우, 보통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고 실직하더라도 재취업 욕구도 강하다. 그래서 중년에게는 파산 절차보다는 회생 절차가 더 적합하다. 그런데 회생 절차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그리고 집이 경매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을 위해 회생 절차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살펴보고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개인회생절차는 통상 3년 동안 ‘소득에서 생계비를 제외한 잔액’을 모두 빚을 갚는 데 쓰는 대신, 나머지 채무를 면책받는 제도다. 채무액이 최대 95%까지 면제된다. 문제는 많은 분이 향후 금융 거래, 신용,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회생 절차는 일상생활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의 회생 절차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을뿐더러 구직 활동이나 통장 거래도 자유롭다. 오히려 회생을 신청하지 않고 신용 불량 상태가 되면 급여 압류나 채권 추심사의 방문과 전화 독촉에 시달려 사회 활동이 굉장히 위축된다. 물론 회생 절차 중엔 일시적으로 신규 대출, 신용카드 사용에 제한을 받지만 절차가 종료되면 곧바로 회복된다.

그렇다면 이씨의 아파트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채무자가 개인 회생 절차에 돌입하면 예전엔 담보권을 가진 금융기관이 곧바로 경매를 신청해 채무자는 집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회생 기간 동안 채무자가 주택 소유권을 유지하면서도 담보 대출 이자만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고가 아파트가 아니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개인 회생 절차는 많은 이점이 있지만 월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는 다소 불리하다. 이럴 땐 사적 채무조정제도인 '개인 워크아웃'을 권한다. 채무 탕감률은 회생 절차보다 낮지만 변제 기간이 6년에서 8년 정도로 늘어나 매달 들어가는 변제액이 낮아지는 장점이 있다. 다만 탕감 대상 채무종류나 액수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회생과 워크아웃의 장단점을 꼼꼼히 비교해 내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와 상담한 많은 이는 ‘강제로 빚을 탕감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가지며 회생ㆍ파산 절차에 거부감을 느꼈다. 특히 중년 세대는 오랜 기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예기치 못한 실직이나 은퇴로 인한 빚 증가로 좌절감이나 자기 비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씨의 사례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보편적 문제일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개인적 실패로 간주해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럴 땐 냉철함을 잃지 말고 회생ㆍ파산 절차와 같은 사회적 제도를 활용하는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이씨는 개인 회생을 통해 재정 상태를 정확하게 분석ㆍ평가했고, 채무를 줄이는 데에도 성공했다. 자신을 짓누르던 부채 부담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기뻐했다. 개인 회생 및 파산 절차는 ‘실패의 낙인’이 아닌, 다시 일어서서 가족과 함께 안정된 미래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수단인 만큼 현명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박은지 변호사ㆍ서울중앙지법 상근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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