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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만에 나타나 자식 목숨값 챙긴 친모... "이게 상속 정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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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분쟁, 더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사망자는 늘어나고, 가족 형태도 복잡해졌습니다. 부모님 사망 후 부동산에 욕심 내는 형제도 눈에 띕니다. 저성장 추세까지 고착화되면서 상속은 '이 시대 마지막 로또'가 됐습니다. 이래도 가족과 안 다툴 자신 있습니까. 죽은 자도 산 자도 걱정이 없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국일보가 취재했습니다.
한지붕 아래 살면서 엄마를 돌본 건 딸들인데, 남동생만 집을 물려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이숙희(가명·66)씨는 40년간 머물러온 보금자리가 최근 들어 낯설어졌다. 함께 모시고 살던 엄마가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뒤 집주인이 남동생 희철(가명·61)씨로 바뀌면서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2층짜리 주택은 남매가 부모님과 한데 모여 살던 공간이었다. 큰딸 숙희씨가 1985년부터 1층에서 부모를 모셨고, 8년 뒤 남동생이 결혼과 함께 2층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가족의 평화는 구순이 넘은 노모가 돌아가신 지 3개월이 지나서 희철씨가 갑자기 서류 한 장을 누나에게 내밀면서 깨졌다. '유언자 권경애(가명)는 수증자 이희철에게 상기 부동산을 전부 유증한다'는 유언장이었다. 숙희씨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유언장 공증 날짜는 2019년 7월 23일. 유언 집행인은 희철씨 부인의 친동생, 보증인은 희철씨 부인의 직장 동료들이었다.
그해 엄마의 기력은 많이 약해졌다. 2017년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당뇨 합병증이 심해졌고, 기억력도 점차 흐려졌다. 둘째 딸인 정희(가명·64)씨는 "엄마가 치매가 의심돼 검사를 받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남동생 부부가 '멀쩡한데 왜 병원에 가느냐'고 타박을 줬다"며 "일부러 진단을 미루게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유언장 공증 이후 2주 뒤에 진행한 검사에서 엄마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누나들은 남동생 부부가 평소 엄마 부양에 소홀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간병도 돌봄도 딸들이 주로 담당했다는 것이다. "남동생 부부는 엄마를 재산 취득 수단으로만 활용하며 모욕했어요. 양심을 버리고 부모를 내다 버리는 신종 고려장이랑 뭐가 다른가요?" 정희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남동생 입장은 달랐다. 희철씨 변호인단은 "주택을 물려주겠다는 어머니의 의사가 확고했으며, 고령으로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저하된 면은 있을지 몰라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고, 유언에 요구되는 의사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밝혔다. 노모와 함께 찍은 일상 사진들을 공개하며 희철씨가 부양 책임도 다했다는 입장도 전해왔다. 누나들은 남동생을 상대로 유언장 무효 소송과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 등을 진행 중이다.
가족 간 상속 분쟁은 기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보통은 △협의상속(공동상속인 전원동의로 결정) △법정상속(법정 순위대로 비율에 따라 균분 상속)으로 평화롭게 이뤄지는 게 대부분. 하지만 숙희씨 가족 사례처럼 특정 자식에게 유산이 쏠렸을 경우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게 된다.
1991년 개정된 현행 상속법은 이 같은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피상속인(고인)의 유언보다 우선해 상속인이 최소한도로 재산을 받아갈 수 있는 몫을 보장해 놨다. 이른바 유류분 제도이다. 구(舊)상속법에선 상속인 뜻이 절대적이다 보니 남아선호사상과 맞물려, 장남에게 모든 재산을 남겨주고 '출가외인' 딸들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유류분 제도는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측면이 강한 만큼,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나머지 상속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우리 변호사는 "딸들이 아들보다 부모 부양에 앞장서는 경우도 많은데 딸이라는 이유로 상속 과정에서 보상을 받지 못하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심정으로 권리 찾기에 나선 중년 여성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다만 유류분 제도가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고 '불효 자녀'의 몫까지 합법적으로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유류분 제도는 위헌 심판대에도 올라 있다. 윤지상 변호사는 "유류분 자체가 상속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며 "피상속인의 재산권과 상속인들의 권리를 모두 감안해 유류분 범위를 적절히 제한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마땅히 받아야 할 이들에게 상속 재산이 가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을 제대로 걸러내는 것도 '상속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다. 현행 민법(1004조)이 정한 상속 결격 사유는 △살인·살인 미수 △상해 치사 △유언 방해 △유언 강요 △유언서 위조·변조·파기·은닉 등으로 제한돼 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직계존속 등은 재산 일부를 합법적으로 물려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자식의 재산을 상속받는 비상식적인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김종선(62)씨는 54년 만에 친모를 마주했다. 반백 년이 넘도록 연락 한번 없던 엄마는 2021년 1월 선원으로 일하던 김종안(56·실종 당시)씨의 실종 소식에 '느닷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50년 넘게 한 번도 자식들을 들여다보지 않던 사람이, 막내아들의 목숨값을 챙기기 위해 '엄마'의 자격으로 나타난 것이다.
"위로하러 왔다"고 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는 60대가 된 딸에게 흔한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엄마의 첫마디는 이랬다. "내가 두 살까지 키웠기 때문에 나한테 권리가 있다." 노모는 실종된 아들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종선씨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남동생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느라 애를 태우는 동안, 노모의 가족은 선박회사가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성화였다. 노모는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자 곧바로 아들의 실종 선고를 했고, 사망 보험금과 보상금까지 3억 원을 챙겼다. 종안씨 앞으로 있는 집과 통장도 자신의 명의로 바꿔놨다.
자식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아들 목숨값을 챙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법정 상속 자격 1순위이기 때문이다. 종안씨의 경우 배우자와 자녀가 없어, 민법상 직계존속인 생모가 상속 우선자가 된 것이다. 종안씨에게는 6년간 함께 살아온 사실혼 배우자가 있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속 대상에서 배제됐다.
종선씨는 법의 부당함에 가슴을 쳤다. "54년 동안 엄마 대신 고모와 할머니가 우리 삼남매를 키웠습니다. 보상금을 받아도 그분들이 받아야지, 양말 한 켤레, 사탕 한 조각 안 보낸 사람이 이제 와서 생모라고 자식 목숨값을 챙기는 게 법이고 정의입니까."
국민적 공분이 컸지만 법 개정은 지지부진하다. 종안씨의 억울함을 풀어줄 '선원구하라법'은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지만, '양육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자'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구하라법'(민법 일부 개정안,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부양 의무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두고 여야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하라법과 대척점에 있는 '불효자 방지법' 입법 여부도 관심사다. 부모 생전에 재산을 물려받은 자녀가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학대 등 부당하게 부모를 대우했을 때 증여를 무효로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효를 강제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모를 재산 취득 수단으로만 악용하는 행태는 제어할 필요성이 있다"(이우리 변호사)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이양원 변호사는 "의식이 불명확한 노부모로부터 제멋대로 재산을 증여받고 부모를 저버리는 경우에 대비해 공공 성년 후견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고윤기 변호사는 "부양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효도 계약'으로 불리는 부담부증여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계약서를 쓰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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