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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알지만 싸니까" 고물가가 부른 중국 쇼핑 앱의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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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성모(49)씨는 최근 중국 쇼핑 앱에서 초저가 상품을 검색하는 데 푹 빠졌다. 테무(TEMU) 앱을 내려받은 뒤로 수없이 메시지가 날아온다. ‘당첨되셨습니다 3만 원 할인 혜택, 무료 배송 남은 시간 6시간, 지금 쇼핑하면 90% 세일, 대박! 이건 꼭 확인하세요’ 등 휴대폰을 안 누를 수 없는 유혹이 이어진다. 처음엔 성씨도 중국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이 강해 주저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국내에선 상상도 힘든 초저가 제품이 즐비하고 종류도 다양했다. 결제는 카카오페이와 연동되고 90일까진 반품도 무료니 안 살 이유가 없었다. 성씨는 “운동화 한 켤레만 사도 10만 원을 훌쩍 넘는 세상인데 테무에선 1만 원대 제품도 쓸 만한 게 많다”며 “배송이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게 흠이지만 주머니 사정과 가성비를 생각하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생활 물가가 치솟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합리적 소비가 늘면서 초저가 제품을 앞세운 중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의 한국 시장 공략이 거세지고 있다. 테무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 쉬인(Shein) 등 중국 쇼핑 앱과 해외 직구 플랫폼은 생산업자와 해외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유통 혁신과 가격 경쟁력으로 미국 등 전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을 장악할 태세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
지난 2월 미국프로축구(NFL) 결승전 슈퍼볼 TV 방송엔 당시까지 생소했던 한 쇼핑 앱 광고가 등장했다. 원피스 한 벌이 단 9.99달러(약 1만3,000원)에 불과하니 걱정 말고 마음껏 사라는 메시지는 고물가에 허덕이던 미국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슈퍼볼 광고 30초에 최소 80억 원을 쓴 광고주가 다름 아닌 중국 2위 전자상거래업체 핀둬둬(PDD)의 쇼핑 앱 테무다.
이후 테무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내려받은 쇼핑 앱이 됐다. 구글플레이에선 다운로드 수가 1억 회도 돌파했다. 초저가 전략이 위력을 발휘하며 미국뿐 아니라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등에서도 1위 앱에 등극했다. 모두 물가 상승률이 높은 나라다. 핀둬둬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배인 688억 위안(약 12조6,000억 원), 순이익은 155억 위안(약 2조8,000억 원)을 달성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조사회사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7월까지 1만 명도 안 됐던 테무 앱의 월간활성자수(MAU)는 10월엔 183만 명까지 증가했다. 한 달에 60만 명씩 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중국 직구 앱의 공습은 알리바바그룹이 내놓은 알리익스프레스가 시작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배우 마동석이 등장하는 광고는 ‘틀면 나오는’식으로 쏟아지고 있다. 첫 구매자에겐 90% 이상 할인해주는 ‘웰컴혜택’과 배송 기간을 3일까지 줄이고 ‘정시배송 보장’을 강조한 뒤 지키지 못할 땐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마케팅도 이용자를 늘렸다. 주문량이 늘며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배송을 전담하고 있는 CJ대한통운의 주가가 뛸 정도다.
이처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급성장하면서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의 판도도 재편되고 있다. 10월 기준 쇼핑 앱 이용자 수는 쿠팡(2,846만 명) 11번가(816만 명) 알리익스프레스(613만 명) G마켓(582만 명) 테무(266만 명) 순을 기록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1년 새 이용자 수가 배로 늘어 G마켓을 추월했다. 테무까지 합치면 중국 앱 이용자 수는 11번가도 앞지른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 이어 중국의 또 다른 해외 직구 플랫폼인 쉬인도 한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쉬인은 지난해 아마존을 제치고 글로벌 다운로드 1억7,000만 회를 기록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의류 쇼핑 앱이다. 지난해 매출 160억 달러(약 21조 원)를 기록했고, 기업 가치는 1,000억 달러(약 130조 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미국 기업공개(IPO)도 추진하고 있다.
돌풍 이유 ①인플레이션
중국 쇼핑 앱 인기의 배경으론 우선 초저가 제품을 찾게 만든 고물가 상황을 꼽을 수 있다. 치솟는 물가에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실질 소득은 줄고 이자 부담도 커진 소비자는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품질과 디자인도 쓸 만해진 중국 상품은 구세주나 마찬가지이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급업자들이 잇따라 가격을 올렸다”며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 싸고 괜찮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소비자들 입장에선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②쓸 만해진 품질
둘째, 그동안 중국산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 수준이 크게 향상됐고 제품군도 다양해진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전엔 싸구려나 짝퉁(가품)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 정도면 쓸 만하다’는 리뷰가 늘고 있다. 아무리 저렴해도 도저히 쓸 수 없는 제품은 살 수 없다. 그러나 국내에선 100만 원 가까이 줘야 하는 로봇 청소기를 중국 쇼핑 앱에선 10만 원대에 구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디자인은 한국에서 사간 뒤 생산만 중국에서 해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경우도 많다”며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중국 제조 생태계의 경쟁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마약 빼곤 다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품군이 다양하고 선택의 폭도 넓다.
③중간 유통 과정 생략
셋째, 해외 직구 플랫폼이 기존 유통 단계를 줄여 소비자 혜택을 키운 점도 있다. 이전에는 중국 도매시장에서 제품을 사입한 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을 통해 파는 구매대행이 많았다. 그러나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이런 중간 유통단계를 빼고 중국 내 생산자와 해외 소비자를 직접 연결한다. 사실 국내 쇼핑 앱에서 팔리는 제품의 상당수는 이미 중국산이다. 더구나 중국 쇼핑 앱은 해외 직구 형식이라 관세도 안 낸다. 그만큼 가격은 더 쌀 수밖에 없다.
해외 직구 무역적자 5조
고물가에 가성비 제품을 찾는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나무랄 순 없다. 그러나 우려도 적잖다. 이미 해외직구 무역적자가 가시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해외직구는 2020년만 해도 1조9,000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3조4,000억 원 적자에 이어 올해는 적자 폭이 5조 원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50%에 육박했던 미국 직구 비중이 올해 30%선 아래로 급감한 반면 같은 기간 중국 직구는 20% 아래에서 50%선까지 급증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추세가 더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내년엔 한국 물류센터까지 가동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회사 측은 짝퉁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하고 100% 환불 등 소비자 보호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점유율은 쿠팡(24.5%)이 가장 높았고, 네이버쇼핑(23.3%) 신세계그룹의 쓱닷컴·G마켓·옥션(10.1%) 11번가(7.0%) 순이었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의 공습으로 우리나라 온라인 시장의 재편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경우 자연스레 유통업뿐 아니라 제조업까지도 타격을 받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짝퉁 단속 필요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본 전자상거래 시장 정상인 아마존재팬이 비즈니스는 일본에서 하지만 핵심은 미국에 두는 것처럼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도 같은 방식을 취할 것”이라며 “이 경우 중국 기업이 초저가로 한국 온라인 시장을 장악한 뒤 결국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 생태계까지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여전히 짝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최소한의 안전 인증조차 받지 않은 중국산 제품이 무방비로 수입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최소한 우리 업체들이 지식재산권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단속을 해야 한다는 요구다. 실제로 올 들어 중국 직구가 급증하고 통관 시간까지 지연되자 관세청은 근무제를 바꿔 24시간 비상 체제를 가동한 상태다. 조한진 관세청 대변인은 “지식재산권 침해 수입품의 99%가 중국산”이라며 “엑스레이 전수조사와 품목별 세관별 집중 조사를 통해 짝퉁을 적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중국 직구가 관세를 피하기 위한 우회로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규제 필요성도 제기한다. 800달러(약 100만 원) 이하의 수입품은 무관세인 미국에서도 중국산은 이런 기준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는 개인이 150달러(미국발 물품은 200달러) 이하 물품을 해외 직구로 수입하는 경우엔 신고를 생략할 수 있고 관세와 부가세도 부과하지 않고 있다. 이때 발급되는 개인통관고유번호는 이미 2,500만 건도 돌파했다.
국내 업체 근본 경쟁력 키워야
그러나 큰 흐름을 바꾸긴 쉽지 않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국내 쇼핑 앱이나 온라인 시장에서 파는 제품도 생산지가 중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 앱에서 직접 구입하면 더 싼데 중간 유통 단계가 들어가 가격만 비싼 곳에서 사라고 강제할 순 없다. 결국 국내 전자상거래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과 충돌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중국 쇼핑 앱이 선풍적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실 미국도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미국 아마존에서 팔리는 상품의 70%가 이미 중국산이어서 이를 모두 막는다면 아마존까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메이드인차이나'가 없으면 미국 서민들이 힘들어진다는 점을 미 정치권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중국 쇼핑 앱의 공습은 온라인 시장의 성장과 함께 더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며 “우리 업체들도 디자인은 국내에서 하더라도 생산은 동남아에 맡기는 식의 기획과 혁신을 통해 중국산에 맞설 수 있는 근원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허경옥 교수도 “공급업자들이 원료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데만 열중할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비장한 각오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은 올해 5,339조 원에서 2026년 7,661조 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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