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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에게 권하는 '8년전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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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2대 총선을 기다리고 있을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2016년 1월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당시 국무조정실장에서 물러나면서 남긴 '퇴임의 변'을 다시 읽어본다.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 경제 활성화, 노동개혁 관련 법안들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이 법안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밀려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해를 넘기는 현실을 보면서 무력감, 분노, 좌절감을 느꼈다. 이런 정치 환경 아래에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논의나 설계가 어렵다."
추 부총리가 정치 입문을 왜 결심했는지 그 고민이 묻어난다. 경제가 도약하기 위한 필수 과제인 노동·연금 등 구조개혁이 정치에 발목 잡힌 현실을 바꾸겠다는 포부가 보인다. 국회로 가 한국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퇴임 일성은 이해관계, 이념 대립의 늪에 빠져 성장 해법은 모색하지 않는 정치권을 향한 일침이었다.
국회의원 6년을 거쳐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1년 반 동안 경제사령탑으로 일한 추 부총리는 다시 총선 출마를 위해 퇴임을 앞두고 있다. 여의도 시절 특색 없는 '경제정책통'에 그쳤던 그의 브랜드는 '스타 장관'으로 확장했다. 추 부총리가 전국적 인지도를 얻고 몸값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추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로 재임하면서 별처럼 빛났다고 군말 없이 끄덕이긴 어렵지만, 그의 공을 마냥 깎아내릴 수도 없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대외 요인에서 비롯한 고물가를 큰 탈 없이 넘긴 게 대표적인 성과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하면 물가 상승을 잘 제어한 편이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신용 경색, 올해 상반기 경기 하락 등도 원만하게 통제했다. 나랏돈을 적극 쓰지 않은 데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나 긴축 재정을 하면서 경기 하강에서 벗어난 건 평가할 만하다.
'리스크 관리'로 요약되는 추 부총리의 공로는 거꾸로 한계이기도 하다. 발등의 불은 껐으나 저성장, 저출산 등 엄습하는 대형 경제 악재를 대응하기 위한 구조개혁 기틀을 닦는 데는 소홀했다. 눈앞의 과제에 집중하고 중장기 숙제는 제대로 짚지 못한 다른 전임 경제부총리들과 다를 바 없었다. 정치권이 무관심한 마당에 경제부총리 홀로 구조개혁을 밀어붙이기 어려운 현실이긴 하지만 그 역시 관료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여의도로 향하는 추 부총리가 지역구인 대구 달성 공천을 받으면 승리는 무난해 보인다. 3선 의원으로서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뿐만 아니라 의회 정치의 꽃인 원내대표까지 역임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음 국회에서 꽃길을 걸을 추 부총리가 그에 안주하지 말고 구조개혁의 씨앗을 심고 키우는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인 추경호'는 '관료 추경호'가 하지 못했던 구조개혁을 추진하기에 좋은 환경을 누린다. 정책 파급력 때문에 언행을 신중히 해야 했던 경제부총리 시기보다 말과 행동에서 자유롭다. 정치 체급이 오른 만큼 추 부총리 행보가 지니는 무게도 초·재선 때와 비교해 묵직해질 테다.
기획재정부를 떠나는 추 부총리는 생애 두 번째 퇴임의 변을 준비하고 있을 터다. 그가 8년 전 정치 출사표를 던지면서 밝혔던 구조개혁에 대한 결기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국민의힘에 필요한 건 스타 장관인 '2023년의 추경호'일지 몰라도, 국민에게 필요한 이는 '2016년의 추경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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