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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가 포스터 붙이고 황정민이 표 팔고... 두 배우를 다시 무대로 올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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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섭외 1순위'로 꼽히는 배우 설경구는 20대 때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서 공연 포스터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생'인 청년을 먼저 알아본 건 김민기 학전 대표였다. 꼬박 한 달 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밥벌이를 하려고 공연 포스터를 붙였던 설경구에게 김 대표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출연을 제안했다. "성실해 보였다"는 게 이유였다. 대학 졸업 후 딱히 갈 곳 없던 배우 지망생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행운이었다. 그렇게 '학전 1기'가 된 설경구는 1994년 출발한 '지하철 1호선'에 처음으로 올라탔다. 삶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은 철로 위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한 절규(영화 '박하사탕'·2000)와 비밀북파공작 작전이 취소된 뒤 국가에 버려진 뒤 "비겁한 변명입니다"라고 총을 쏘며 한 포효('실미도'·2003) 등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도 그가 학전을 거친 뒤 줄줄이 탄생했다. 5일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 공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설경구는 "학전은 제 연기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공연) 포스터를 붙이다 오디션도 보지 않고 발탁됐어요. (제작 현실이 열악해 줄 없는 마이크인) 와이어리스가 6개밖에 없었는데 전 노래를 못해 와이어리스 없이 무대에 올랐죠. 그런데도 김 대표님이 저를 끝까지 끌고 갔고요."
"못자리 짓는다는 마음으로" 다시 뭉친 학전의 후예들
설경구처럼 1991년 문을 연 학전을 통해 성장한 예술인들이 모여 '학전 어게인' 공연을 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영난과 김 대표의 건강 악화 등으로 학전 창립 33주년인 내년 3월 15일 폐관 예정인 이 극장이 계속 같은 곳에서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을 모았다. 이 공연으로 학전을 추억하고 문화 다양성의 텃밭이 된 '학전'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취지다. '학전 어게인'을 기획한 가수 박학기는 "학전은 저 같은 통기타 가수들이 설 수 있는 꿈의 장소였고 많은 배우들이 그 무대를 통해 배출됐다"며 "학전이 문을 닫는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피어난 정신은 사라질 수 없고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것이란 바람을 담아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학전 어게인' 공연은 내년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학전에서 열린다. 설경구를 비롯해 황정민, 장현성, 배해선, 방은진 등 학전 출신 배우들과 그룹 동물원과 시인과 촌장, 유리상자, 박학기, 윤도현, 알리, 이은미 등 이 극장에서 음악을 시작하거나 김 대표 음악의 영향을 받은 후배 가수들이 공연에 릴레이로 참여한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와 '김민기 헌정 공연'을 비롯해 유재하 가요제 출신 가수들이 모여 공연을 여는 것도 추진 중이다. 1998년 뮤지컬 '의형제'로 학전 무대에 처음 선 배우 배해선은 "예전에 공연이 있으면 학전 마당에 잔칫집처럼 상을 차려 배우들과 관객들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소통하곤 했다"며 "그런 시간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 출신 배우 장현성은 "20대 초반 학전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김 대표님이 '난 연극도 연기도 모른다. 하지만 너희들과 못자리 짓는다는 생각으로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행복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한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닮고 싶은 어른이기도 한 김 대표의 그런 정신이 오랜 시간 학전을 통해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서정성과 희망, 그리고 연대를 기억한다"
김 대표가 1991년 문을 연 '학전'은 대학로 소극장 공연의 요람이었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 독일 극단의 원작을 한국 실정에 맞게 재창작한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의형제' '개똥이' 등 한국적 정서를 담은 소극장 뮤지컬을 선보였다. '고추장 떡볶이' '우리는 친구다' '무적의 삼총사' 등을 통해 고사 직전이었던 어린이·청소년극 창작에 물을 대기도 했다. '학전'은 1990년대 댄스음악에 밀려 주류 음악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은 통기타 가수들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다. 이날 행사장에선 황정민을 비롯해 이은미, 윤도현, 윤종신 등 여러 배우와 가수들이 함께 부르는 '아침이슬' 영상도 공개됐다. 김 대표가 1971년 낸 '아침이슬' 발표 50년을 기념해 2021년 함께 부른 노래였다. 김형석 작곡가는 "'학전'의 (김)광석이 공연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며 "'아침이슬' 발표 50년 트리뷰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형(김 대표)의 음악을 더 집중해서 들으면서 형의 음악에 깔린 서정성과 희망 그리고 연대의 서사들이 나 그리고 후배, 음악 팬들에게 큰 선물이었고 그 DNA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전 어게인'의 공연 수익은 학전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200석이 채 안 되는 소극장이라 공연 수익이 크지 않고 극장도 월세로 운영돼 이 기금으로 학전을 계속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지하철 1호선' 초연 멤버인 방은진 감독은 "유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등에 무언가를 바라거나 학전의 공간을 유지한다고 해서 이 극장이 계속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다만, 문을 닫는다 하더라도 학전답게 마지막을 장식하고 김광석 부조와 학전 벽체 하나 그곳에 계속 남겨졌으면 하는 게 소박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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