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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임윤찬 등도 거쳐간… 라디오 클래식 방송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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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KBS 클래식FM(93.1Mhz)은 클래식 음악을 널리, 오랫동안 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 온 채널이다. 청취자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알고 싶은 사람, 상업 광고 없는 음악 방송을 선호하는 사람, 일상 속 배경 음악으로 잔잔하게 틀어 놓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하다. 개인의 생활 패턴에 따라 클래식FM은 공기처럼 일상에 스며들어 동반자가 됐다.
하지만 보편적 콘텐츠를 다수에게 전하는 방송(broadcasting)은 수용자의 요구와 선호도에 적극 대응하는 온디맨드(on demand) 시대에 와서 존재감이 많이 약해졌다. 클래식 애호가들, 특히 젊은 세대는 알고 싶은 아티스트와 작품을 유튜브 뮤직이나 각종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직접 찾아 듣고, 비슷한 취향의 음악까지 즉시 추천받는 것을 선호한다. 직장인들도 근무 환경 변화와 출퇴근 시간의 자율성이 높아지니, 시간대에 따라 충성도 높은 청취자들의 이동과 청취율의 변화도 눈에 띈다.
이 때문일까. 공영방송의 수신료 얘기가 나올 때마다 클래식FM 애청자들은 긴장하게 된다. 대중음악 채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청취율도 낮고, 상업 광고까지 없으니 방송사 손익을 따져 볼 때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채널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전국 방송, 보편성, 공신력이라는 여러 의미를 덧대어도 회사의 운영이라는 현실 앞에 희생돼야 할 대상으로 클래식FM이 언급될까 싶어 미리 걱정스럽다. 고전, 클래식의 의미는 시간에 관계없이 지금도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는 걸작을 의미하는데 공영방송에서조차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클래식FM에는 20년, 30년 이상 꾸준히 이어져 온 프로그램들이 있다. 개편을 통해 진행자와 피디는 바뀌지만 프로그램 제목과 성격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수십 년째 수용자 조사와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물로,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 '출발FM과 함께'는 익숙한 클래식 음악을 경쾌하게 소개하며 출근 시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본격적 하루가 시작되는 오전 9시에는 '가정음악'이,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10시부터는 '당신의 밤과 음악'이 곁을 지키고, 점심 시간대에는 클래식 음악의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생생클래식'이 방송된다.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 퇴근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는 클래식 음악부터 크로스오버, 월드뮤직, 재즈에 이르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장르 제한 없이 들려준다. 국악('FM 풍류마을')과 재즈('재즈수첩'), 가곡('정다운 가곡')은 시간이나 요일의 변화만 있을 뿐 클래식FM의 터줏대감이다.
KBS가 유럽방송연맹(EBU)과의 제휴로 세계 각국의 최신 연주 실황을 전문가 해설과 함께 소개하는 'FM실황음악'과 전설적 연주자와 최고의 연주를 선별해 소개하는 '명연주 명음반', 연주회 현장에서 해설과 함께 생생한 소리를 전달하는 '실황특집 중계방송'은 애호가들의 애청 프로그램이다. 유명 연주자들도 이들 프로그램을 들으며 함께 성장했다고 말한다.
'KBS음악실'은 귀 기울여야 할 핫이슈의 중심이다. 1979년 1FM(클래식FM의 전신) 개국과 함께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 음악계 전반의 소식을 꾸준히 다뤄 왔다. 크고 작은 국내 콩쿠르 예선부터 음악회 소식, 유망주와 거장을 초대해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이 채널은 한국 음악가의 위상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높아졌는지 담아낸 중요한 다큐멘터리가 됐다. 작곡가 진은숙이 직접 출연해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미공개 음원을 소개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김선욱이 10대 때 우승한 에틀링겐 콩쿠르,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당시의 인터뷰도 남아 있어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차근차근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어린 임윤찬의 행보도 이 채널에서 처음 목격했다. 피디와 작가, 진행자들은 어느새 영재 발굴 도사들이 됐다. 덕분에 이들이 찾아낸 유망주들의 음반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은 어느 음반사도 해내지 못한 작은 천재들의 소중한 기록이 됐다.
최근까지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무대를 찾던 관객 중 이제 볼 공연이 없다며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다. 화제성 많은 공연을 직접 들으러 가는 것도 일상의 즐거운 이벤트가 되지만, 일상의 모든 시간대에 음악을 곁에 두고 들을 수 있는 것도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만들어 준다. 공신력을 갖춘 진행자들의 프로그램 선곡과 해설을 꾸준히 듣다 보면,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수용하며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지 이상적인 방법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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