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자랑스럽다" 네팔서 첫 성소수자 부부 탄생

입력
2023.11.30 21:16
수정
2023.11.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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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차별 금지 개헌 불구
결혼법 개정 안 돼… 결혼 불가
지난 6월 대법 제동으로 제도 변화

지난 8월 30일 수렌드라 판데이(왼쪽)와 트랜스젠더 여성 마야 구룽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AFP와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카트만두=AFP 연합뉴스

지난 8월 30일 수렌드라 판데이(왼쪽)와 트랜스젠더 여성 마야 구룽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AFP와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카트만두=AFP 연합뉴스

네팔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부부가 탄생했다. 네팔 헌법은 2015년부터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했으나, 오랜 기간 결혼 법안이 개정되지 않았다.

30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성소수자 커플 마야 구룽과 수렌드라 판데이는 전날 네팔 수도 카트만두 서쪽 람중 지역의 도르제 마을 관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혼인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이는 네팔과 남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커플이 법률상 결혼에 성공한 사례다. 구룽과 판데이는 2017년 임의로 결혼식을 올린 뒤 줄곧 함께 살았다. 구룽은 트랜스젠더 여성이지만 법적 성별이 아직 바뀌지 않아 남성으로 등록돼 있다. 판데이 역시 남성이어서 두 사람은 서류상 같은 성별이다. 법률상 동성 결혼인 것이다.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네팔 법률에 따르면 사실 이들 부부는 2007년부터 법적 혼인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네팔은 2007년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고, 2015년엔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헌법에 못 박는 개헌을 단행했다. 그러나 네팔 의회가 결혼 관련 법안 개정을 하지 않아 정부는 성소수자 결혼 신청을 번번이 거절했다.

이에 지난 6월 네팔 대법원은 정부에 성소수자 결혼을 허용하라는 임시 명령을 내렸다. 구룽과 판데이 부부는 이 판결을 토대로 최근 마을 관청에 혼인 신청을 했으나 또다시 거절당했고, 이후 법원에 소송까지 냈지만 기각됐다. 그러다가 네팔 내무부가 이번 주 들어 등록 절차를 바꿔 모든 지방 행정관청에서 동성 결혼을 등록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현재 네팔에선 성소수자 80여만 명이 일자리와 보건, 교육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룽·판데이 부부의 결혼 등록을 지켜본 성소수자 운동가 수닐 바부 판트는 "이번 일은 결혼 평등을 위한 23년에 걸친 싸움 뒤 얻은 역사적 성취"라고 평가했다. 구룽은 AFP에 “우리는 매우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네팔은 2013년 시민권 문서에 남성·여성 외 ‘제3의 젠더’ 범주를 만드는 법안을 통과시켜 2015년부터 여권 등에 적용하고 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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