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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이 답이다

입력
2023.11.30 19:30
수정
2023.11.30 19:4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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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29표는 우리 외교 한계 보여준 숫자
외교가 전략이 없이 행사, 인기 위주로 흘러
외교도 큰 목소리 아닌 귀가 커져야 하는 것

29일 부산 해운대구청 외벽에 걸려 있던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뉴스1

29일 부산 해운대구청 외벽에 걸려 있던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뉴스1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와 여러 지점에서 유사하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현장을 뛰던 기업인들은 힘들다, 어렵다고 주변에 토로해 왔다. 그런데도 막판 뒤집기라는 정부의 낙관론은 시간이 갈수록 팽배해졌다는 것이다. 구청장 선거 때도 마찬가지 현장 민심이 일찍부터 확인됐는데 여권은 근거 없이 기대치를 높이다 참패했다. 그러나 국익을 놓고 각축하는 외교 영역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외교 정책은 전략이라고 할 만한 것과는 거리가 있고 행정적이고 행사, 인기 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원로 외교관의 고언이 틀리지 않다. 우리 외교가 실수와 오판을 반복하지 않을 방도를 찾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얻은 29표는 단순 부산 지지표가 아니라 편향된 우리 외교의 한계를 보여주는 숫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 우리가 또 어떤 오판을 하고 있는지 국제 정세부터 겸손하게 돌아보고 정책들도 다시 살펴야 한다. 유치 실패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 탓으로 치부한다면 문제는 숫자 29에만 그치지 않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 경험칙 중 하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면 승리한다는 막연한 기대, 밀어붙이기는 외교무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장 얘기와 무관하게 위에서 드라이브를 걸수록 현장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선 외교도 경청에 답이 있다. 큰 목소리의 주장보다 가만히 주변을 경청해야, 귀가 커져야 외교도 알게 된다. 귀가 마비될 정도의 경청이 있어야 진실을 마주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외교는 참사를 피하기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은 처음엔 결단으로 보였다. 외신들이 참석자를 중국 편으로 간주하던 당시 톈안먼 성루에 오른 것은 국제 외교가 대사건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낯선 길을 간 이유에 대해 “(중국과) 경제 및 북핵 문제에 있어 협력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었다”고 중앙일보에 연재 중인 회고록에서 최근 밝혔다. 대북 외교, 북핵에 대한 중국 협조 포석이란 의도에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청 없이 단행된 대사건이 중국 물정에 어두운 까막눈 외교로 전락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듬해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중국 레버리지에 대한 기대는 잘못된 것임이 확연해졌다. 공교롭게 워싱턴이 박 정부의 친중을 의심하고 그런 연장선에서 논란 많던 사드 배치가 이뤄지자, 중국은 한한령으로 보복조치를 가했다. 결국 열병식 사건 이후 지금까지 한중 관계는 악화일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도발에서 비롯된 문제이긴 하나 자기중심적인 아마추어 외교가 아니었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일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초당적이어야 할 외교마저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부의 것은 실패가 되고 주요 정책이 제로(0)에서 재출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미중 정상이 단절된 군사채널 복원에 합의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한반도에선 남북 군사합의 파기가 진행됐다. 냉전시대 미소 군사 핫라인처럼 미중은 파괴적 결과로 이어질 경쟁, 갈등이 없을 것임을 회담에서 과시했다. 반면 남북은 2017년 위기의 결과로 남아 있던 군사합의를 무력화시키며, 화염과 분노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32년간 한국을 지켜본 일본 외교관은 한국은 국민 정서, 사회 분위기인 공기(空氣)에 휩쓸리는 경향이 강해 미래에 장애가 될 것이란 쓴소리를 남긴 바 있다. 30년 전에 비해 더 편향돼 있으며, 그럴듯해 보일 뿐 잘못된 이해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게 그가 내린 진단이었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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