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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낼 돈은 없고 여행 갈 돈은 있고"... 인천공항세관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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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 게이트로 나옵니다. 인상착의 확인!"
15일 오후 1시 33분. 이탈리아 로마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정보가 뜨자 관세청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김영록 심사정보과 체납팀장은 무전기로 실시간 여행객 위치와 수화물 수, 동행자 여부를 확인했다.
이들이 이토록 분주하게 움직인 건 이 비행기에 지방세 4,000만 원을 체납한 채 해외여행을 다녀온 김모(50)씨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과 함께 입국한 김씨는 첫 세관 검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진 체납팀 주무관이 여행용 가방을 열어 명품, 보석류 등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자, 그는 굳은 얼굴로 연신 주변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빠른 시일 내에 낼게요."
그러나 김씨처럼 순순히 응하는 체납자는 극히 소수다. 대부분은 "돈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이날 오후 4시 중국 베이징에서 들어온 이모(60)씨도 그랬다. 세관 직원이 다가가자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검사 하루 이틀 받는 것도 아니고, 돈 없어요. 없어!" 수화물 가방을 들고 있는 이씨의 아들을 불러 세워 짐 검사를 했지만, 압류할 정도의 귀중품은 나오지 않았다. 이씨 역시 짐이라곤 작은 백팩이 전부였다. 이 주무관은 "상습 체납자들은 검사당한다는 걸 알아서 자기 가방을 갖고 다니지 않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씨는 밀린 세금으로 향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세관직원의 '경고'를 뒤로 한 채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세관당국이 가택 수색뿐 아니라 공항에서도 체납자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에서 압류할 물건이 없을 경우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세청은 2021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공항에서 2,400여 명의 체납자 휴대품을 검사해 체납액 납부를 '유도'하고 있다. 압류·징수 인원은 2021년 499명에서 2023년 9월 기준 618명으로 늘었지만, 검사 인원 중 납부하는 경우는 10명 중 1, 2명에 불과하다.
인천공항 특송물류센터 한쪽에 있는 체화 장치장에는 '체납, 관세 미신고 등으로 통관이 보류된 물건(체화)'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날도 관세 1,000여만 원을 내지 않은 체납자가 32만8,410원짜리 구찌 슬리퍼를 직구하다 통관 보류가 되자, 물품을 포기했다. 김 팀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하는 건데 세금 낼 돈은 없고, 물건 살 돈은 있고, 참 답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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