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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생명수... 찻잎으로 피고 소금으로 환생한 쑤여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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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수도 라싸 인근, 해발 4,342m에 자리 잡은 르둬향(日多鄉)에 온천지질공원이 있다. 8세기에 티베트 불교 창시자로 숭상되는 연화생대사가 온천을 찾았다. ‘죄업을 씻어내고 영혼을 정화해 자선과 관용의 마음을 간직하게 되니 공덕을 쌓게 된다’고 했다. 불경에 기록했다. ‘백병(百病)’을 치유하리라고 예언처럼 노래했다. 1,300여 년 전 조사의 칭찬 덕분에 보물로 여겨진다. 호텔 대신 초대소(招待所)라 하니 구닥다리 느낌이다. 여행자를 우대한다며 숙박비가 30~50위안이다. 너무 싸서 놀라고 들어가지 못해 아쉽다.
산천이 온통 약초인 땅에서 솟아오르는 물이니 보배가 아닐런가? 설산에서 녹아 깊이 가라앉았다가 끓어오른 물 온도가 최고 83도다. 겨울에 고원의 온천과 만나면 축복이다. 천길 낭떠러지를 넘어온 마방에게도 ‘신의 가호’나 다름이 없었으리라. 수질도 청량하다. 2002년 중국 국토자원부로부터 국제의료온천표준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온천에 푹 몸을 담그고 싶다.
르둬샹을 10여분 지나 국도 옆 민가를 방문한다. 문양이 담백한 이층집이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에 이목구비 반듯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쑤여우차(酥油茶)를 따라준다. 티베트 사람들은 하루에 수십 잔을 마시는 음료다. 청보리 가루인 참파(糌粑)는 주식이다. 둘은 찰떡궁합이다. 야크젖으로 만든 버터 쑤여우는 지방질 덩어리로 비타민이 풍부한 푸얼차와 소금이 합체한다. 긴 대나무 통에 함께 넣고 작대기로 휘휘 섞어주면 훌륭한 차가 된다. 고원지대에서 얻기 힘든 차를 짊어지고 끊임없이 피눈물을 흘렸던 보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몇 배 이상의 이문이 남는 장사였다.
그만큼 차와 소금이 소중했다.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온다. 옛날 옛적에 한 촌락의 토사(土司) 아들 원둔바와 다른 촌락의 토사 딸 메이메이춰가 서로 사랑을 했다. 두 집안은 오랫동안 원수였다. 결국 딸의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원둔바를 살해했다. 화장으로 치러진 원둔바의 장례식에서 메이메이춰가 불길로 뛰어들었다. 순정(殉情)하고 말았다. 사랑을 따라 목숨을 버렸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주인공이 함께 죽는 비극이다. 중국에도 사랑과 비극에 관한 전설이 많다. 러브스토리가 많기로 유명한 항저우 서호에 가면 ‘양산백과 축영대’가 만난 장교(長橋)가 있다. 사랑을 꽃피우지 못하고 연인은 한 쌍의 나비로 승화한다.
티베트 전설에는 강렬한 환유가 있다. 산화한 처녀는 차나무의 찻잎으로 피어난다. 먼저 죽은 총각은 염호의 소금으로 환생한다. 쑤여우차를 만들 때마다 서로 다시 만나 하나가 된다. 나비의 비상도 아름답지만 일상에 떠오르는 사랑이야말로 훨씬 감동적이다.
쑤여우차 맛은 버터 향 짙은 미숫가루 국물 같다. 아침저녁으로 마신다. 집에서나 외출할 때나 시시때때로 틈만 나면 마시기에 늘 잔을 들고 다닌다. 두루마기에 넣고 다니며 한평생 사용하는데 대부분 나무로 만든 사발, 목완(木碗)을 사용한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싼 편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평생 연인’인 목완을 꺼내 쑤여우차를 마신다. 나무 사발은 신랑을 만나 혼례를 올리는 신부와 비슷하다. 민가에 전해오는 재미난 노래가 있다.
연인과 함께 하니 부끄럽고( 帶着情人吧害羞),
연인과 헤어지려 하니 애타네(丢下情人吧心焦).
연인이 목완과 같다면( 情人如若是木碗),
가슴에 품어야 더 좋으리라( 藏在懷里該多好).
손님이 오면 어울려 마신다. 예의이자 풍습이다. 바깥에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찻잎이 된 처녀와 소금이 된 총각을 떠올리며 모두 차를 마신다. 미소가 예쁘고 순박한 소녀가 중국어로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훈훈한 티베트의 정이 느껴진다. 부리부리한 눈매인데 왠지 슬픈 듯한 호남형 아저씨도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수 천km를 달려온 차와 소금에 대한 고마움이 충분히 전달된다. 사람 사는 냄새가 피어난다. 못내 아쉬운 시간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길을 다시 떠나자마자 유목민이 사는 천막이 보인다. 초원을 침대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야크 분변이 사방에 널려있다. 유목 생활의 필수품이다. 커다란 빵 조각이 흩어져 있는 듯하다. 어쩌면 빵보다 더 귀한 물건이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 둘이 나온다. 야크가 분출한 젖을 응고해 덩어리로 말리고 있다.
천막으로 들어가니 쑤여우가 걸려 있다. 줄줄이 엮은 모습이 각설탕을 걸어둔 듯하다. 오래 사용하도록 건조한 쑤여우는 상비약처럼 늘 준비돼 있다. 물통과 주방기구, 옷가지와 이불이 정리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두 개의 기둥을 묶어 빨랫줄도 연결했다. 전기를 끌어 쓰는지 전선도 보인다. 아이들의 수줍어하는 웃음이 해맑다.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 안아주고 싶었는데 마음뿐이었다. 그저 속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한다.
이제 행정구역으로 라싸시에 속한 말고궁까르(墨竹工卡)를 지난다. ‘먹빛 대나무가 있는 청룡 왕의 거주지에 있는 땅’이라 한다. 상상하기 참 어렵다. 복을 많이 받은 토지라는 뜻이라 짐작할 뿐이다. 파릇파릇한 풀이 솟고 하늘은 파랗다. 구름이 뒤덮고 있지만 날씨가 쾌청하다. 국도와 경쟁하듯 전깃줄이 끊임없이 따라온다. 고원인데 산세는 아담하다. 간혹 스치는 티베트 민가는 순백의 담장과 은은하고 담백한 색감을 드러낸다. 두 귀처럼 집에 달린 룽따도 예쁜 자태다. 자연과 조화로운 모양새다.
국도는 반듯하고 평탄하다. 변화무쌍한 구름은 며칠이나 달려온 여행객의 눈을 여전히 즐겁게 한다. 바람의 속도로 수많은 형상을 그리는 하늘은 한 편의 영화 같다. 산을 돌아가면 또 어떤 스크린이 펼쳐질지 기대를 하면 지루할 틈이 없다. 차창 밖으로 불쑥 자전거가 지나간다. 가냘픈 몸으로 고산을 넘었으니 대단하다. 찰나에 휙 지나간다. 해발 높은 고개를 넘으려 애쓴 고충도 지나가버린다.
국도에서 5km 남쪽에 자마향(甲瑪鄉)이 있다. 서기 617년 티베트 왕 쏭짼감뽀(སྲོང་བཙན་སྒམ་པོ་)가 태어났다. 출생지 입구가 마치 궁전처럼 웅장하다. 통치자의 외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후계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많았으며 품성도 좋았다. 12세에 아버지 남리쑹짼(གནམ་རི་སྲོང་བཙན་)이 살해당하고 귀족과 결탁한 주변 왕국의 협공으로 위기를 맞았다. 왕위에 오른 후 타고난 지혜와 통솔력으로 사태를 진정시켰다. 곧바로 군사력을 결집해 숨파와 샹숭을 점령하고 청장고원을 통일한다.
티베트 일대를 통일한 후 얄룽짱뽀(雅鲁藏布) 강을 건너 북상한다.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져 있고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춘 라싸로 천도한다. 네팔의 앞선 문명을 받아들이고 당나라와 화친 결혼을 통해 외교 무대에 등장한다. 칭하이성과 간쑤성 일대 선비족인 토욕혼과 강족 일파인 탕구트까지 복속해 굳건한 제국을 건설한다. 안타깝게도 서기 650년 33대 티베트 왕이자 최초의 제왕은 34세로 요절한다.
2층 담장에 다소곳하게 놓인 화분이 빛을 뿜고 있다. 하늘을 향한 룽따는 수양버들처럼 휜 채 휘날린다. 옥상으로 오르는 사다리 뒤로 오성홍기가 펄럭거린다. 아늑하고 한가로운 마을이다. 대낮이라 주민은 보이지 않고 야크가 자유롭게 거닐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그저 친구처럼 보이는지 무심하다. 맑은 두 눈이 한없이 선량해 보인다. 동물이 사는 세상에 온 느낌이다.
쏭짼감뽀 시대의 업적 중 하나는 문자의 창제다. 학자 퇸미 쌈보따를 인도에 파견했다. 산스크리트어를 토대로 티베트 문자를 만들었다. 자음 30개와 모음 4개로 이뤄진 표음문자다. 앞과 뒤, 위와 아래에 자모가 더덕더덕 붙어 발음이 까다롭지만 원리만 알면 생각보다 쉬운 언어다. 적어도 표의문자보다는 말하기 편하다.
티베트는 7세기에 자기만의 문자체계를 확립해 문화와 종교 강국으로 발전했다. 봉건시대 티베트 통일 군주가 간 동선을 따라간다. 이정표에 병기된 티베트 문자가 깨알 같다. 바로 밑을 통과할 때 '라싸(ལྷ་ས་)'를 읊조려본다. 티베트 불탑이 햇살을 머금고 있고 도로를 정비하는 사람들도 스쳐 지난다.
라싸까지 라싸하(拉萨河)가 계속 따라올 참이다. 강물에 투영된 하늘이 밝게 빛나고 있다. 라싸의 동대문인 딱체(達孜)를 지나니 터널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산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구름도 숨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다. 다시 구름을 뚫고 내리쬐는 햇빛이 보기에도 따갑다. 터널을 빠져나올 때마다 풍광이 새롭다. 여전히 터널인가 싶을 정도로 하늘이 까맣게 변한다.
마지막 터널을 나오니 해도 보이고 먹구름도 보인다. 멀리 비가 흩뿌린다. 도무지 한눈을 팔기 어려운 변화무쌍이다. 갑자기 창밖에 펼쳐진 엄청난 환영(幻影)에 차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무지개! 화려한 환영(歡迎)을 위해 그다지도 오랫동안 오락가락 천변만화했단 말인가? ‘물이 펼쳐진 문’이라 무지개라 하던가. 중국어로 차이훙(彩虹), 티베트 말로는 자촌(འཇའ་ཚོན་)이라 한다.
라싸대교를 지나는데 쌍무지개가 보인다. 쌍무지개는 솽훙(雙虹)이다. ‘빨주노초파남보’ 하나씩 헤아려 본다. 갑자기 시릴 정도로 가슴이 찡하다. 색채빈분(色彩繽紛)이 따로 없다. 다채롭고 찬란하다는 말이다. ‘빈분’은 ‘손님(賓)과 나눔(分)’이 꼭꼭 ‘실(糹)’로 묶여있는 꼴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손님과의 인연이니 어찌 오색찬란하지 않을까. 차마고도를 넘은 마방 역시 귀한 손님이었다. 무사히 사지를 통과한 여행객에 대한 환영 인사가 참으로 화려하다.
드디어 도착한 티베트 수도 라싸. 호도협을 출발해 약 1,800㎞를 달렸다. 마방의 우여곡절이 녹아있는 초원, 협곡, 고개를 지났다. 국도가 흔적을 지운 듯해도 어렴풋하게나마 마방의 노고와 고통을 느낀 시간이다. 차마고도는 피와 땀이다. 사랑으로 담아낸 찻잎과 소금이다. 옛길이지만 영원히 남을 역사의 뒤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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