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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품 규제 퇴보가 유감스럽다

입력
2023.11.29 00:00
26면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 회원들이 21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를 규탄하는 전국 공동행동에 참여해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 회원들이 21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를 규탄하는 전국 공동행동에 참여해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에 세종에 사는 친구와 환경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에 종이컵 보증금 제도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귀찮은 종이컵 보증금 제도가 사라진다면 인정하긴 싫지만 확실히 편하긴 편할 것 같다고 친구가 말한 것이다. 나는 종이컵 보증금 제도가 도대체 뭐냐고 되물었다.

알고 보니 세종과 제주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프랜차이즈 브랜드 카페나 제과점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300원의 보증금을 더 받고, 다 쓴 일회용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본래는 이 제도가 전국에서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세종과 제주로 시행 지역을 한정해 환경부가 추이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 9월 감사원이 환경부에 전국에 시행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고, 환경부는 지방자치단체 자율로 맡기는 방식으로 관련 규제의 엄격한 적용을 회피하는 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 11월에는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소비자 불편과 소상공인 부담 때문이라지만, 말하자면 그냥 손을 놓아 버린 것으로 보인다. 자율규제를 통해 부담을 해소한다는 미명은 좋지만, 이런 종류의 시민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일을 지자체들이 중앙정부 지침 없이 자발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믿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비슷한 일이 더 큰 스케일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이번 달 7일, 환경부가 계도기간 종료를 보름 앞두고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를 철회하고,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조처 계도기간은 무기한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가 까다로웠다. 기껏 도입하려고 애를 쓴 규제를 환경부가 이렇게 쉽게 엎어버린다는 사실이 말이다. 우리가 익숙하던 계절이 과거의 농담 같은 것으로 변하고, 우리가 사랑하던 자연의 풍경이 녹아내리고 있는 지금 이때에.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물론 종이 빨대는 커피 맛을 탁하게 만들고 금방 흐물거리게 변한다. 언제나 종이컵을 대체할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은 역시 귀찮은 일이다. 만약 내가 사는 서울에도 종이컵 보증금 제도가 시행됐다면 앞서 언급한 세종의 친구가 그랬듯이 투덜거렸을 것이다. 친환경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역시 개인에게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개인이 스스로 친환경적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친환경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믿는다. 환경 분야에 있어서 우리가 그렇게 잘해 온 것이 이미 있다. 분리수거라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분리수거란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오랫동안 이에 익숙해졌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 규제를 뒤엎는 것이 우리나라의 환경 문제에 조금도 긍정적이지 않으리라는 것에 더해서, 정부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신뢰 자체에도 악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도 자명해 보인다. 계도 기간이 끝나면 환경부가 종이컵 사용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리라 믿고 이에 맞춰 행동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크게는 종이 빨대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작게는 카페 주인이 다회용기를 잔뜩 들여놓을 수도 있었을 테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고스란히 손해가 돼 돌아왔을 텐데, 이는 또 어찌한단 말인가.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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