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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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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겨울을 상징하는 도구를 꼽으라면 단연 난로일 것이다. 아무리 추워도 난로를 지핀 실내에서는 누구나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그래서 난로는 서민ㆍ약자에 대한 배려가 강조되는 정치권에서 긍정적 비유와 상징의 대상으로 자주 사용된다. 반면, 난로는 스치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수 있는 만큼 위험하고 무서운 이미지도 갖고 있다.
□ 난로의 긍정 이미지를 활용한 인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그가 대통령 직무를 시작할 무렵인 1933년 3월 미국 경제는 대공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불황과 대규모 실업 사태가 수년간 이어지고, 금융시스템도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이때 루스벨트가 내놓은 조치가 ‘긴급은행법’이었다. 예금보호공사 설치를 통해 은행건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내용이었지만, 이 정책의 성패는 국민들의 호응에 달려 있었다.
□ 국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루스벨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금융위기 상황과 우량 은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경제위기에 맞서 기꺼이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는 호소를 서민의 일상 언어로, 그것도 최대한 편하고 비공식적 어조로 내놓았다. 그의 담화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첫 시도에서 효과를 본 뒤 루스벨트는 재임 기간 30여 차례나 비슷한 방식의 메시지를 내놨다. 그의 참모들이 이런 전달방식에 '노변정담(fireside chatㆍ爐邊情談)'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절묘했다. 추위에서 약자를 지키는 난로의 상징을 효과적으로 차용했기 때문일까. '노변정담'을 통해 루스벨트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강화됐다.
□ 난로의 무서운 이미지가 교훈적으로 사용될 때도 있다. 잘못한 이를 솎아내고 벌을 줘야 할 경우다. 미국 경영학의 개척자 더글러스 맥그리거는 회사나 조직이 공정성을 잃지 않으려면 '뜨거운 난로의 법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잘못하면 그 즉시, 지위고하와 친소관계를 따지지 않고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비하 금기어를 사용하고도 사과 않는 정치인과 그걸 두둔하는 지지자들의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치판에 긍정적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들이라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부터 '뜨거운 난로의 법칙'을 적용하는 게 시작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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