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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K팝에 '숟가락 얻기'보다 중요한 이것

입력
2023.11.26 15:30
수정
2023.11.26 15:49
20면

<6> 문 닫는 '학전', 철거된 '원주 아카데미 극장'... 풀뿌리 문화 공간의 위기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성상민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1991년 설립돼 서울 대학로를 대표하는 소극장으로 불렸던 학전. 연합뉴스

1991년 설립돼 서울 대학로를 대표하는 소극장으로 불렸던 학전. 연합뉴스

대중음악 공연 시장은 늘 살얼음판이었다. 그간 다양한 장르에서 출중한 가수들이 등장했지만 정작 이들이 재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제대로 된 '마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각각의 장르에 맞게 전문적인 공간이 등장한 뮤지컬이나 e스포츠와 달리 대중음악은 콘서트에 알맞게 설계된 공연장이 좀처럼 지어지지 않은 탓이다.

가뭄에 콩 나듯 2006년 일본 자본과의 협력을 통해 서울 광진구에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인 악스홀(현 예스24 라이브홀)이 들어섰지만, 이 공연장이 수용할 수 있는 관객 수는 2,000명 남짓이었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팝 인기 가수들이 공연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그래서 이들은 고척스카이돔이나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같은 체육시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공연장으로 설계된 시설이 아니라 음향 문제 등에서 한계가 명확했지만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들일 수 있는 공연장이 서울에선 체육시설밖에 없었던 탓이다. 2만 명 이상을 들일 수 있는 전문 공연장이 서울에 전무한 현실에서 지난가을부터 올림픽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이 보수 및 이전 등의 이유로 잇따라 문을 닫자 나훈아 등은 공연장을 찾아 아예 서울 밖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콜드플레이 등 해외 유명 가수들의 내한 공연도 뚝 끊겼다. 'K팝 성지'로 불리는 문화 강국에서 변변한 대형 공연장이 없어 '코리아 패싱'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에서 소프트웨어 못지않게 하드웨어가 중요한 배경이다.

오랜 시간 지역에서 문화예술 성장에 물을 댔던 공간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아예 고사 위기에 몰렸다. 지역 영상 문화 확산에 이바지한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최근 허물어졌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었던 이곳은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민관 합동으로 재생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시장이 바뀐 이후 지난달 철거공사가 진행됐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성지인 대학로 학전 소극장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난에 김민기 대표의 건강 문제 등으로 내년 3월 문을 닫을 예정이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지붕이 대형 크레인 장비에 의해 붕괴된 모습. 아카데미극장의 친구들 범시민연대 제공

원주 아카데미극장 지붕이 대형 크레인 장비에 의해 붕괴된 모습. 아카데미극장의 친구들 범시민연대 제공


철거 전 원주 아카데미극장.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었다. 문화연대 제공

철거 전 원주 아카데미극장.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었다. 문화연대 제공

학전의 폐관과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철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두 곳 모두 지역 문화예술과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상징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전은 대학로 소극장 공연의 요람이었다. '고추장 떡볶이' '우리는 친구다' '무적의 삼총사' 등을 통해 고사 직전이었던 어린이·청소년극 창작에 물을 댔고, 1990년대 댄스음악에 밀려 주류 음악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은 통기타 가수들의 보금자리가 돼 라이브 소극장 공연 문화도 일으켰다. 학전은 김윤석 설경구 조승우 황정민 등 선 굵은 배우도 여럿 배출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국내에 마지막 남은 '시네마 천국' 같은 공간이었다. 1963년 개관해 60년 전통을 지닌 이 극장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근대 문화유산으로 역사성을 띠는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이런 소극장들이 줄줄이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것은 단지 한 극장의 문제가 아니다. 풀뿌리 문화뿐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관객의 추억까지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풀뿌리 문화 공간의 소멸은 공존을 추구하기 위해 이 시대 화두로 떠오른 문화다양성 확산을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문화다양성의 보루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다. 민간에서 알아서 잘하고 있는 K콘텐츠 진흥에 정부와 지자체가 팔을 걷어붙이고 온갖 지원 방안을 쏟아 내고 있는데, 정작 정부의 지원이 가장 필요한 소극장 육성책은 감감무소식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젠 차려진 밥상(K콘텐츠)에 숟가락을 어떻게 올릴까를 노심초사할 때가 아니라 그 기반인 '밥상'이 엎어지지 않도록 고민해야 할 때다. 바다 없이 빛나는 등대도 없다. K콘텐츠 산업에서 활약한 인력을 키운 소극장 문화가 흔들릴 때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른바 K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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