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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치는 사회가 심는다

입력
2023.11.25 00:00
19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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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는 어린이의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는 노래다. 그런데 동요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사람 조심하세요. 어물어물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찾아보니 1933년에 나온 곡이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자전거에 쏟은 부러움이 담겼다. 그런데 노래대로라면 사고가 나더라도 사람이 못 피한 탓이다. 아무리 어렵던 때였더라도 재물의 가치가 사람에 앞서니 기막힐 노릇이다.

소위 '탈 것 우선주의' 문화는 그 후로도 계속된다. 차와 사람이 한데 살아가는 도시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가 있다. 신호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신호등의 주요 임무는 차를 안전하게 보내는 데 있다. 넓은 길을 건너려면 여러 방향의 차를 다 보내야 사람 차례가 돌아온다. 이런 시스템을 아는 사람은 깜빡이는 신호를 보면 뛰기 마련이다. 만약 신호가 자주 바뀐다거나, 보행자가 건너고 싶을 때 신호를 조정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을까?

시골 마을은 더 심각하다. 사람이 걸어갈 여백이 없는 2차선 국도, 길 건너 앞집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길이 태반이다. 마을길이 찻길이 된 후, 할머니는 새댁일 때 오가던 마실을 마음 놓고 못 다닌다. 유모차 하나 밀고 갈 여유도 없는데, 행정가들은 그곳에서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기를 바란다. 시멘트를 바르고 차선을 그릴 때 사람은 안중에 없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노인이 자전거를 알아서 피해야 했던 세상은 어린이가 자동차를 알아서 피해야 하는 세상으로 이어졌다.

영국에서 잠깐 살 때의 이야기다. 대형마트에 들러 집수리에 쓸 페인트를 고르다가 쌓여 있던 통 몇 개가 무너졌다. 그중 하나가 뚜껑이 열리면서 통로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곧 직원 서넛이 대걸레를 들고 달려왔다. 난감한 얼굴로 "미안하다, 내가 정리하겠다, 변상하겠다"는 이방인에게 한 직원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먼저 '다치지 않았느냐?'라고 묻고, "밖으로 나오라, 정리는 우리의 일이다"라고 차분히 말했다. 그다음으로 "이런 경우 반품 처리가 된다. 배상받을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일을 처음 겪었을 때는 그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얻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땠을지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후 유사한 상황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이런 처리 방식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사건은 늘 생길 수 있다는 '상호 이해',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감', 사람에 대한 '가치'가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재물에 대한 변상 제도는 이것을 실현시키는 최소한의 장치였던 것이다.

사회 구성원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요구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는 성장하면서 사람의 가치를 배울 교육 기회고, 둘째는 배운 대로 행한 사람이 보상받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다. 대중교통의 노약자석, 학대받는 아동에 대한 신고 제도처럼, 자발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문제는 정책적 지지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대한민국이라고 하지만, 인심은 여전히 팍팍하다. 이것이 단지 인성이나 문화의 문제일까? 사람의 가치를 앞세우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람이 먼저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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