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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의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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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북 정읍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혼자 살며 조금씩 모아온 4,000만 원을 주민센터에 놓고 가 화제다. 이 노인은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며 절대 신원을 밝히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지난 10월 충남 천안시의 월세방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최국환(74)씨도 2,000만 원을 기부했다. "그동안 많은 지원을 받았는데 이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이유다.
□ 최근 미국 뉴햄프셔주에선 82세로 숨진 주택단지 관리인 제프리 홀트가 무려 380만 달러(약 50억 원)를 고향에 남겼다. 낡은 트레일러에서 TV도 없이 검소한 생활을 해 온 그는 사실 난독증이 심한 학습 장애인이었다. 이후 다행히 독서를 즐길 수 있게 되자 경제 서적을 탐독한 뒤 펀드에 투자해 부를 일궜다. 그럼에도 잔디깎기 등 허드렛일을 하며 소박하게 살았다. 그의 인생 목표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의 기부는 전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 어려운 이들만 어려운 이들을 돕는 건 아니다. 지난달 92세로 영면한 세계 최대 면세점 업체 DFS의 창립자 찰스 프랜시스 피니는 살아있는 동안 80억 달러(약 10조 원)의 재산을 내놓아 ‘기부의 전설’로 불렸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도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4년부터 모든 기부를 익명으로 해, ‘자선 활동의 제임스 본드’란 별명도 붙었다. 평생 15달러짜리 시계를 찬 그는 “필요한 것보다 넘치는 부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써야 한다”고 설파했다.
□ 영국의 자선구호단체 CAF가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기부 문화의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인도네시아와 미얀마다. 모두 우리보다 경제 규모나 1인당 소득은 훨씬 낮은 나라다. 더구나 한국의 세계기부지수 순위는 2011년 57위에서 2022년 88위로 후퇴했다. 기부가 의무는 아니다. 기부를 안 하든 못하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자신은 궁핍하게 살면서도 선뜻 큰돈을 내놓는 이들의 모습은 진정한 부자가 누구인지 돌아보게 한다. 사실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땐 빈손이지 않았는가. 심지어 기부는 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큰 행복이다. 날씨가 차가워졌다. 곁불도 절실한 이들은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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