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이 함께 살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데 22년 걸렸다"

"동성 커플이 함께 살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데 22년 걸렸다"

입력
2023.11.26 07:00
수정
2023.11.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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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동성 부모 로진느 마이올로
동성혼 합법화 법안 발의 장혜영 의원
'부모 말고 모모' 온라인 북토크서 만나
프랑스가 22년 동안 이룬 세 가지
①시민계약 ②동성결혼 ③보조생식술

프랑스인 동성 부부 로진느 마이올로(맨 왼쪽)와 나탈리(맨 오른쪽), 둘의 첫째 딸 쥘리에트(가운데). 사계절출판사 제공

두 여자가 만났다. 프랑스인 동성애자 부모인 로진느 마이올로(43)와 국내 첫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 둘은 로진느의 에세이 ‘부모 말고 모모(母母)’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21일 온라인에서 마주했다. 둘은 한국이 1999년 동성 커플의 동거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시민연대계약(PACS)을 만든 프랑스보다 동성 커플의 인권이 24년이나 뒤처졌다고 지적하며, 이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프랑스 "엄마가 두 명이구나, 멋지네"

“내 가족과 종교, 사회를 거스르고 법을 어기면서 살아가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단지 내가 사랑에 빠졌고,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범법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진느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2008년 동성인 나탈리와 사랑에 빠진 순간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성애자였던 그가 동경했던 ‘남편·자녀들과 함께하는 삶’이 순식간에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진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받아들였고, 2014년 나탈리와 결혼했다.

프랑스는 1999년부터 동성 커플도 가족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PACS를 도입했고, 2013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로진느가 결혼과 임신을 준비한 2014년만 해도 사회적 편견과 법적 제약은 여전했다. 로진느의 가족과 지인들은 그의 결혼을 지지하지 않았다. 임신도 어려웠다. 당시 프랑스에선 동성 부부의 시험관 시술, 인공수정 등 '보조 생식술'이 불법이었다. 로진느는 이를 허용하는 스페인에서 아이를 임신했다. 현재 9세 딸과 4세 아들이 있다.

21일 열린 '부모 말고 모모' 온라인 북토크에 참여한 프랑스 원서 공저자인 스테파니 가티뇰(왼쪽부터), 장혜영 의원, 로진느. 독자들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프랑스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동성 커플의 보조 생식술이 2021년 허용됐다. 로진느는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루어진 변화였다"며 "최근엔 '모모' 가정이라고 공개하면 '엄마가 두 명이구나 멋지네'라며 다음 대화 주제로 넘어갈 정도다"라고 전했다. 과거 프랑스에서도 동성 부부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존재했다. 하지만 법이 생기자 태도가 달라졌다. 로진느는 "이제 그 누구도 감히 동성 커플이나 비혼 여성에게 허용된 보조 생식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의 테두리가 생기면서 동성애자들도 더 이상 숨지 않게 됐다. 로진느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완전히 알고 있다"며 "가끔 아이들과 있을 때 사람들이 아빠에 대해 질문하면 나는 '아빠는 없다'고 답한다"고 했다. 이어 "그래야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와 삶이 금기시돼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고 강조했다.

로진느는 지금은 나탈리와 헤어졌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살며 아이를 함께 양육한다. 로진느는 "우리의 헤어짐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훼손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우리 가족 또한 다른 전통 가족(이성 부부)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동성 결혼·임신, 법 없이 차별 계속"

국내 동성 부부인 김규진씨는 지난 6월 만삭 사진과 함께 임신 소식을 알렸다. 김규진씨 엑스 캡처

“한국은 동성 결혼이 불법은 아니지만 합법도 아닙니다. 법 자체가 없어서 관습적으로 차별하고, 보조 생식술 역시 불법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비혼이나 동성 부부에게 시술해주지 않습니다. 동성 부부인 김규진님은 프랑스가 1999년 시민계약을 만든 것과 비교하면서 ‘한국은 프랑스보다 24년 뒤처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장혜영 의원이 설명한 한국의 동성 커플 인권은 걸음마 수준이다. 그나마 지난 5월 장 의원이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는 '혼인평등법', 동성 커플이 가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생활동반자법', 비혼 여성도 보조 생식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비혼출산지원법' 등 '가족구성권 3법'을 발의하면서 논의의 물꼬를 텄다.

장 의원은 "한국의 낡은 가족 제도를 현실의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에 맞추려는 법안"이라며 "법이 통과되면 동성 부부도 법적으로 ‘부부’이자 ‘부모’로서 인정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의당이 지난 5월 31일 개최한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회견. 연합뉴스


33개국 동성 결혼 허용..."사는 방식 맞춰 법 바꿔야"

로진느는 "프랑스에서도 동성 커플이 함께 살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이 허용되는 데 22년이 걸렸다"며 "더디더라도 결국 평등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응원했다.

그는 또 동성애자 권리 확대의 가장 중요한 힘으로 ‘시간’을 꼽으며 “우리 사회가 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이혼이 금지돼 왔지만 프랑스인들은 계속해서 헤어졌다”며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발맞추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이 변화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성 결혼 합법화가 동성애를 부추긴다는 우려에는 "동성애자 권리 부여가 동성애를 부추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며 "어떤 여성도 '여성과 결혼할 수 있으니 여성을 유혹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동성애자가 '국가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나라에서 가족을 꾸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진느가 나탈리와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둘째 아이를 가지게 된 과정을 담은 에세이 '부모 말고 모모'. 사계절출판사 제공

동성애자 권리는 전 세계적으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동성 결혼은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전 세계 33개국이 합법화했다. 2019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대만은 지난 5월 동성 부부의 입양권을 허용했다. 일본에서도 지난 6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규정이 ‘위헌 상태’(법률이 헌법 취지에 어긋나나 당장 효력을 상실하지는 않음)라는 판결이 나왔다. 태국 의회는 다음 달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을 논의한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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