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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하게 지졌수다"... 힘겨운 겨울나기, 온기 불어넣는 '공공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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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도 오셨네요. 차 한잔 드릴까요?"
"나야 수요일만 기다리지. 덕분에 뜨끈하게 지졌수다."
22일 오전 서울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절기상 첫눈이 온다는 '소설(小雪)'이지만, 마을 골목길엔 이른 아침부터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자그마한 바구니를 손에 쥔 어르신들이 나누는 정담에 고적했던 불암산자락은 간만에 활기를 띠었다.
매주 수요일은 서울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의 '비타민 목욕탕'이 손님을 맞는 날이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은 대부분 집에 온수시설이 없는 주민들을 위해 2016년 11월 무료 목욕탕을 열었다. 8명이 들어가면 꽉 찰 만큼 크기는 아담하지만, 이름 그대로 목욕탕은 마을 공동체의 비타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네 어귀에 사는 장순분(84)씨도 단골이다. 1967년 정부가 판자촌 주민들을 이곳에 강제 이주시키기도 전에 정착한 그는 60년 만에 목욕탕이 생긴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예전엔 사거리 목욕탕을 가려 해도 허리가 굽어서 택시를 타야 했어. 그마저도 산자락이라 잘 안 잡혔지. 가까운 게 최고지 뭐."
현재 백사마을에 사는 98가구 중 50여 가구가 비타민 목욕탕을 이용한다. 주 2회 운영하는데, 인기가 많다 보니 수요일은 남성, 목요일은 여성만 받는다. 서하영 연탄은행 복지사는 "오전 10시 영업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앞에서 기다리는 어르신들도 있어 가급적 빨리 문을 연다"며 웃었다.
달동네 사람들에게 목욕탕은 그저 몸만 씻는 공간이 아니다. 1971년 마을에 자리 잡은 조병길(81)씨는 "목욕 전날에 연탄은행에서 안부전화를 해준다"면서 "이웃끼리 얼굴도 보고 좋다"고 했다. 김점례(78)씨는 "목욕탕이 오래 운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동안 도우미 봉사도 했다"고 말했다.
공공성격이 가미된 목욕시설은 또 있다. 지난해 7월 개관한 금천구 '동네방네 사우나'는 겨울이면 한 달에 1,300명 넘는 손님이 몰린다. 이날 오후 5시 마감까지 목욕을 즐긴 박입분(61)씨는 "친구나 며느리랑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온다"고 말했다.
달동네도 아닌 주거단지 한복판에 구청이 목욕탕을 지은 까닭은 고령화와 무관치 않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욕실이 변변찮은 다세대주택에 사는 고령인구 비율이 높은 편이라 목욕탕을 편의시설로 원하는 분들이 많았고, 목욕탕 관리에 중장년∙노년층을 고용하면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거뒀다"고 설명했다.
이 사우나는 '모두를 위한 시설'이라는 지향점에 걸맞게 곳곳에서 배려가 눈에 띈다. 요금은 7,000원이지만 금천구에 사는 65세 이상 어르신,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미취학 아동 등에게는 5,000원만 받는다. 안전사고에 대비해 탕 수위도 앉았을 때 배꼽 정도에 맞추고,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 전용 의자도 설치했다. 목욕탕 관리인은 "한 건물에 있는 도서관에 왔다가 부모님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물론 시세보다 저렴하고, 또 아예 무료로 운영하는 공공목욕탕이 수지를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 공공요금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목욕탕 고정 지출만 60만 원 정도 드는데 감염병 사태를 거치며 후원이 30% 가까이 감소해 운영 요일을 4일에서 2일로 줄여야 했다"고 토로했다.
민간 업자들의 반발도 신경이 쓰인다. 최근 금천구가 사우나 운영 1년을 맞아 연 공론회에서 생존권을 이유로 "요금을 올리거나 영업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인근 목욕탕 업주들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씻을 권리는 의식주 못지않게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취약계층을 위해 자치단체나 당국의 보다 적극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공목욕탕과 대중목욕탕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바우처를 도입하거나, 이동목욕탕을 활성화하는 등 실현 가능한 대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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