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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라면값에 집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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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TV 뉴스로 "정부가 물가 인상을 막기 위해 이른바 ‘라면 사무관’ ‘빵 서기관’을 지정해 관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는 “안 그래도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가 이제 좀 잡히는 거냐”며 안도했다. 하지만 몇몇 식품의 가격 인상을 잡아 둔다고 물가가 잡힐까 의문이 들었다.
올해 정부는 라면값과의 전쟁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월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 대비 하락한 것에 맞춰 기업들이 라면값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느닷없이 뭇매를 맞은 식품회사들은 이내 일부 라면 출고가를 내렸다. 효과가 있었는지 국내 물가상승률은 지난 7월 2.3%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3개월 연속 다시 오름폭이 커졌고, 10월 전년 동월 대비 3.8%의 물가상승률1을 기록하자 정부는 다시 라면값 관리에 나섰다.
하지만 인플레이션2 억제와 라면값은 큰 관련이 없다. 인플레이션을 판단하는 지표로 소비자물가지수3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 지수를 계산할 때 라면 가격은 0.27(가중치)만큼 영향을 준다. 돼지고기(1.06), 국산 소고기(0.88), 쌀(0.55)보다도 영향이 적은 셈이다. 라면값을 잡아도 물가 상승이 멈추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사실 인플레이션을 제한하는 정공법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미국은 기준금리를 급격하게(연 0.25%→연 5.5%) 올려, 9.1%까지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을 3.2%(10월)로 끌어내렸다. 반면 한국은 오히려 이 기간 국내 통화량이 5.1%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책이 엇박자를 내니 기업의 팔을 비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라면값 관리는 경제 정책이라기보단 기업과 국민들에게 보내는 정치적 메시지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정부의 임기응변식 정책이 자칫 자본주의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은행권 초과이익 비판이다.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갑질’ ‘종노릇’이라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은행의 초과이익을 비판했고, 정치권과 금융당국까지 나서 은행을 압박했다. 결국 은행들은 연말까지 자발적으로 약 2조 원에 달하는 상생안을 내놓기로 했다.
‘자발적’ ‘상생’이라는 수식이 붙긴 했지만 은행권에선 여전히 볼멘소리가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행의 사상 최대 이익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 덕분이기 때문이다. 집값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은행 대출을 독려했다가 가계부채 위험이 커지자 대출금리 인상을 주문했다. 또 예금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건 것도 정부였다. 그러니 은행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악질기업으로 매도한다”는 푸념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대통령과 정부 관료의 말 한마디에 급변하고 기업을 옥죄는 식의 경제 환경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다. 갑작스럽게 발표된 ‘공매도 금지’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깎는 요소이다. 혹여 경제 수장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구조 개혁 등 어려운 문제는 놔두고 표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들만 실행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유권자들은 이들을 투표로 심판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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